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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X1]진(S)지한 Teachography

[SX1]15년동안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찾아 왔을 때...

by Teachography 2025. 4. 20.

 

25년 3월 31일... 교사가 되고 15년만에 그동안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나를 찾아와 내 온 몸을 휘감았다. 어느덧 15년차 교사가 된 나에게.... Anger로는 성에 차지 않을 그야말로 분노가 내 마음 속에 밀려들어왔다. 

 

Rage나 Fury로 혹은 Indignation으로 표현해야 나를 휘감은 강력한 불쾌감, 짜증, 분노를 잘 표현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올해 나는 새로운 학교로 옮겼다. 공립학교 교사는 4년에 한번씩 학교를 옮겨야 하는 규칙이 있는데, 작년까지로 이전 학교에서 4년을 채웠으니 새로운 학교로 이동해야만 했다. 이동하고 싶은 학교를 1지망, 2지망, 3지망...에 쭉 쓴 후 각 교사별 점수로 이동학교가 정해진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은 학교는 희망학교 모두에서 순위에 들지 못한 교사로 강제로 채워진다. 나도 이러한 시스템에 따라 올해 옮겨야 할 새로운 학교가 정해졌다. 학교에 오자마자 교장, 교감 선생님이 첫번째로 건낸 인사는 "위로와 연민"의 말이었다. 분명 희망하지는 않았을 학교에 어떻게 하다가 강제 배치되었는지 딱하다는 것이었다. 새롭게 학교를 옮긴 교사한테 환영의 인사로 안타까운 시선과 함께 걱정어린 말을 하는 학교는 이곳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옮겨 다닌 모든 학교에서는 새로운 출발을 응원한다는 의미로 좋은 곳에 좋은 사람이 와서 기쁘다는 긍정의 인사로 시작했었다.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부정적인 것들이 가득한 학교여도 처음에는 장점만 이야기 하는 법이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첫인사가 그저 인사치레였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하더라도 웃으며 반겨주었던 이들을 원망할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는 최소한 시작만큼은 희망차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올해의 새로운 학교는 신선했다. 시작부터 두려움에 휩싸이게 하였다. 도대체 얼마나 심각한 문제들이 가득하면, 처음을 차마... 장점부터 시작하지 못했던 걸까?... 아니... 시작을 함께 할 장점이 아예 없었던걸까?

 

 

25년 3월 4일.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아이들을 직접 만나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생활해 보니 교장, 교감 선생님이 왜 첫인사로 위로의 말씀을 건내셨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는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쉬는 시간 복도에서 우렁차게 들려오는 "야~이 개XX" 소리에 깜짝 놀라면서... 방과 후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학교가 떠나갈 듯한 "이 씨X새끼야"소리가 끊이지 않는 걸 듣고 쫒아나가면서... 쫒아나갔지만 자기화에 눈이 뒤집혀 교사인 나한테도 욕을 이어갈 기세인 아이와 대치하면서... 아무 이유없이 학교를 나오지 않는 아이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하면서... 바르게 앉는 습관이 11살의 나이에도 자리잡지 못해서 단 10분의 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괴로움에 몸을 뒤틀어대는 아이가 한둘이 아닌 걸 보면서...

 

아... 많은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이구나... 하고 아이들의 상황이 훅 내게 들어왔다. 하지만... 화는 나지 않았다. 오히려 거짓말 같게도 뭔가 함께 만들어나갈 일들이 많은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절대... 절대... 화라는 감정은 보일 기미도 없었다.

 

 

25년 3월 31일.

한 수업 시간이었다. 아이들의 학업성취도가 현저히 떨어진다는 건 첫날 교장, 교감선생님으로부터, 작년 담임선생님들로부터도, 기존에 계시던 선생님들의 간증으로부터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교과 수업을 하자마자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의 학업성취도 수준을 국가수준교육과정 성취도를 기준으로 평가했을 때 이전 학교의 아이들보다 3~4단계 아래라는 것을 몇 번의 수업만으로도 진단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수업내용을 더욱 세분화해여서 여러 단계를 나누고, 간단한 과업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갈 수 있게 수업을 진행했다. 작은 성취를 연결해서 마치 큰 성취를 이룬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하겠다는 작전이었다. 성취가 자신감으로 나아갈 수 있게 목표를 세워 함께 가고자 하였다.

 

 

문제는 어디서부터였을까? 20명 아이들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주저안거나 뒤쳐지는 아이들의 등을 밀어주는 노력을 하면서...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던 중... 순간 내 주변에 아이들이 몇 명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쌔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흠칫 놀라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이들은 저~~~만치 뒤에 있었다... 지쳐서 쓰러지거나 돌부리에 발이 걸러 넘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바닥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애써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그렇다... 아이들은 스스로 멈춤을 '선택'한 것이었다.

 

왜 앞으로 가야하냐는 저 나이 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그 물음을 어른이자 교사인 나에게 던지는 것이 아니었다. 물질주의에 빠져서 뭔가 보상을 주면 따라간다고 나에게 주제넘는 협상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땡볕이 쏟아지는 길가의 물웅덩이 그 곳이 자신들이 있어야 할 곳이라는 선언 쯤이었다. 이게 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라는 단호한 반항따위도 아니었다. 설명하기 힘든데... 어찌보면 굉장히 순수한 몸짓이었다.

 

내가 발딛고 있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보는 느낌이 훅 나를 휘감았다. 내가 옳고 저들은 틀리다는 오만따위는 감히 발붙일 수도 없는 굉장히 이질적인 감정이었다. 저 아이들은... 나와 다르다... 아무런 가치평가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말라비틀어져 뼈만 남은 명제가 그저 내 앞에 있는 기분이었다. 

 

순간 나는 저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다고 느껴졌다. 나는... 내 존재는 저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게 강한 결론이었다. 그러자 엄청난 실망감과 분노가 나를 폭풍처럼 휘감았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없을 것이다. 없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자리에 있는 것인가....

 

분노는 나의 무력감에 대한 것이었다...  뭘 할 수 있을까? 뭘 해야만 할까?.... 문제는 어디에서부터 왔고 어디로 향할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