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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X3]서( S)평 쓰(S)는 선(S)생님

[SX3]교사를 위한 연극수업 길라잡이를 읽고서 우리반 아이들과 연극으로 한 해 교육과정을 마무리해 보는 상상을 해 봅니다.

by Teachography 2021. 11. 1.

서평시작.

 

세계 여러나라의 교사들이 학생들과 살아낸 이야기를 잘 다듬어 내놓는 에세이, 또는 수기를 읽다보면 한가지 특징적인 부분이 눈에 띈다. 한국의 교육과는 달리 외국의 교육에서는 "연극"이 학생들을 성장시키고,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에스퀴스 선생님에서부터 독일의 발도르프까지. 우리 교육과 외국 교육은 셀 수 없이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그 중에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질적인 부분은 다름 아닌 바로 "연극"이었다.

 

역사의 차이 때문인가?

문화의 차이 때문인가?

인종적 차이 때문인가?

 

우리나라 교육 이야기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연극"을 통한 성장 드라마가 외국의 교육 이야기에서는 빠지지 않고 늘 등장하다보니 내 마음속은 언제나 궁금함으로 가득하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바로 변화와 성장이다.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느냐는 교육철학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죽음을 의미하는 딱딱하게 굳어 있음에 머물지 않고 생동감 있게 꿈틀대려는 삶의 모습이 바로 교육 그 자체인 것이다.

 

그래서 교육의 주된 관심사는 늘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살아나게 할 것인가?

'어떻게'하면 아이들이 삶을 마주하게 할 것인가?가 되곤 한다.

 

무엇으로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물론 마법같은 교육활동이 이 세상에 존재해서 한방에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는 판타지일 수 밖에 없다. 교육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낱알의 구슬들을 참을성 있게 엮어내는 노력들이 모였을 때 비로소 '변화'는 감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교육실천사례에서 공통적으로 "연극"이 등장한다는 것은 뭔가 마법같은 한방이 "연극'이라는 교육활동에 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1년 동안의 준비기간이 필요한 '제대로 된 연극'을 반 아이들과 하게 되면 뭐가 됐든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엄청난 것들이 마법처럼 이루어지는 것 아닐까?

 

 

한편, 연극과 관련한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은 어떠할까?

 

우선, 첫번째로 한국의 교사들이 그들의 학창시절에 교육과정에서 '연극'을 만나보지 못했다. 아니 너무 일반화시키기에는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나로만 한정지어 보자면, 나는 학창시절에 연극에 참여해 본 일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연극공연을 관람해 본 경험조차 없다. 대학생 때 대학로에서 관람한 '김종욱 찾기'라는 작품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연극이다. 연극을 아이들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는 고민 이전에 '연극'의 맛조차 나에게는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두번째로 연극 공연을 위한 환경자체가 척박해 지고 있다. 내가 거쳐간 학교들을 기준으로 추세를 이야기 해 보자면 요즘 학교에는 "학예회"라고 부를 수 있는 "제대로 된 무대"가 사라지는 중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어른들의 욕심 때문이다.

 

먼저 선생님들의 욕심은 "힘듦"이다. 학예회에서 공연할 작품을 준비하는데는 상당한 에너지가 소비된다. 정규 교육과정시간 외의 시간을 내야만 완성도를 높힐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힘이 드니 정규 교육과정 시간을 전부 활용해서 작품을 준비하게 마련이었는데, 이게 딱 핑계대기 좋은 먹잇감이다. 학예회 공연준비로 교육과정의 침해가 과도하게 이루어진다고 해버리는 것이다. 아이돌 댄스공연, 대중가요 부르기 같은 일회성 흥미위주 작품을 교육적 의미가 있는 작품으로 바꾸는 노력을 하기 보다는 '학예회'를 없애자고 하는 것이 선생님들에는 더 편한 일이다.

 

다음으로 학부모와 학생들의 욕심은 "이기심"이다. 어떤 공연이 됐든 반 아이 전체가 주인공일 수는 없다. 주연이 있고 조연이 있다. 아이돌 댄스를 추더라도 센터가 주연이고 뒤쪽은 조연이 되는 것이다. 딱히 주인공이라고 지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돋보이는 역할이라는 느낌은 귀신같이 모두에게 전해진다. 나이와 성향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아이들과 학부모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싶어한다. 주인공 역할을 맡은 아이는 우쭐해지고, 주인공 역할이 아닌 아이는 실망한다. 각자가 맡은 역할을 모두가 훌륭하게 수행해야만 하나의 작품이 멋지게 완성되는 것인데, 주연은 조연을 배려하지 않고 조연은 '어차피 자신이 돋보이는 것도 아닌데...'라면서 대충대충 해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학급 학예회'라는 것이 등장하였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게 하자'라는 슬로건으로 각급 교실에서 반 아이들끼리 학예회를 진행하는 것이다. 학급 학예회를 몇 년간 계속해 보니 문제점이 한두개가 아니다. 학급 학예회는 관객이 없다. 반 학부모들이 있긴 하지만, 같이 즐길 수 있는 친구들이 없는 것이다. 다음 공연 준비로 왔다갔다 바쁘다보니 학예회라기 보다는 학부모 대상 재롱잔치이다. 또 학급 학예회는 무대가 없다. 교실에서 진행되다 보니 변변찮다. 현수막도 붙이고 풍선도 붙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조명이 없으니 엄밀하게 말해서 무대라고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완성도가 떨어진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한 명의 학생이 장기자랑을 두개정도, 많게는 다섯개정도를 발표하기 때문에 완성도는 하나의 작품을 한달이상 준비하는 것보다는 질적으로 많이 처진다. 모두가 다른 작품을 여러개 준비하기 때문에 담임교사가 연습을 도와주지 못하고 알아서 준비해 오게 하니 더욱 완성도는 민망할 정도가 된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모두가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버린 것이다.

 

 

 

이런 한국의 교육 현실 속에서 외국의 교육사례는 꿈같은 이야기로만 느껴져 왔다. 연극의 맛도 모르는 교사가 연극을 공연하기에는 많이 모자란 학교 현실에 놓인채로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마법의 열쇠같은 연극을 통한 교육" 이야기를 책으로 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꿈같은 이야기라고 해도 나에게 "연극"은 꼭 우리반 아이들과 해보고 싶은 교육활동 중 첫번째이다. 무대를 준비하고 의상을 준비하며 느끼는 기대감, 자기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기 위해 작품에 빠져들어보는 몰입감, 자기 차례가 다가옴에 따라 가슴을 뚫고 나올 듯이 쿵쾅대는 심장소리가 주는 긴장감. 외운 대사를 잊었까봐 마지막까지 자기 대사를 되새겨보는 집중력, 연극을 펼치는 곳이 무대임을 잊고 연기를 펼치며 느낄 수 있는 해방감 등을 아이들과 함께 하고만 싶다. 

 

그러려면 당장 무엇부터 시작해 보아야 할까?

 

이 때 "이노경 님"의 교사를 위한 연극수업 길잡이가 눈에 띄었다. 살짝 아쉽게도 이 책은 내가 기대한 책은 아니었다. 연극기법을 교실로 갖고 들어와 교육적 목표를 위해 연극의 틀을 폭넓게 활용하는 "교육연극"을 위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기대한 것은 마법같은 '연극' 공연을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제대로된 무대예술을 준비하고 실현하는 과정 전체를 교육으로 승화시키는 것을 꿈꾸는 나같은 교사에게는 "교육연극"은 연극을 수단으로 사용하여 다양한 교육적 효과를 도모하는 것은 핀트가 달라서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 책은 매우 가치롭다. 왜냐하면 본격적인 연극을 해 보기에 열악한 우리나라 현실의 첫번째 문제점인 "연극의 맛"을 전혀 모르는 교사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연극적 기법을 통해 아이들과 교사가 연극의 맛에 호기심을 갖게 되면 자연스럽게 예술작품을 연극이라는 장르로 완성시켜보고자 하는 갈증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