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제목이 눈에 띄는 박동섭 교수님의 책이 또 하나 세상에 태어났다. 이리저리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해봐도 역시 감동적이기까지 한 “책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처음부터 ‘감동적’이라는 어휘를 떠올린 것은 아니다. 제목을 처음 본 순간 뭔가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것이 생겼었는데, 교수님의 책을 읽어가면서 조심스레 ‘감동’이라는 어휘가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기술의 발전과 매체의 진화에 따른 ‘1인 creator’ 전성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 ‘1인 매체’와 결합할 수 있는 다양한 수익 모델이 개발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개인이 만든 콘텐츠’를 책이나 방송 등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고 있다. 이때 ‘저작권’으로 대표되는 결정적인 문제가 따라붙는다. 콘텐츠로 인해 발생한 수익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확보하려면 자신이 콘텐츠의 온전한 주인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된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고, 콘텐츠를 자신의 이름으로 내놓았더라도 추후에 표절이나 무단도용으로 법적 처벌을 받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굳이 출처를 밝히지 않는 방식’으로 ‘개인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는 걸 관찰할 수 있었다. 당장의 수익 창출을 위해 출처가 드러나기 전까지 잠깐이라도 ‘남의 것’을 ‘자기 것’인양 하는 것이다. 원작자가 자신의 배타적 권리를 애써 주장할 만큼의 관심이 있는 아이템이 아니거나 자신만이 누려야 한다고 굳이 말하기 민망한 ‘콘텐츠의 구성과 흐름, 스타일, 분위기, 문체 같은 것’일 경우 표절시비 없이 넘어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에 ‘굳이 출처를 밝히지 않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자기 고유의 것처럼 하는 유행이 생긴 것 같다고 나름대로 생각해 보게 된다.(근거는 없지만)
그러다보니 유튜브의 콘텐츠, 출판되는 책들, 포탈의 언론기사, 사람들이 하는 말 등의 카테고리는 그 종류가 조금 과장해서 무한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지만, 하나의 카테고리를 들여다보면 마치 복사-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아무런 차이점 없이 비슷하거나 거의 똑같은, 그래서 누구의 말인지 구분이 불가능한 ‘지문(指紋)을 찾을 수 없는’ 콘텐츠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마치 유명 먹거리 거리라고 해서 가보면 너도 나도 ‘원조’라고 광고하면서 다 똑같은 것들만 팔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같은 주제의 콘텐츠를 여러 개 찾아보면 볼수록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주의가 환기되는 것이 아니라, 급격하게 피로감이 쌓여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편, 현재 초등 교사들에게 이제 없어서는 안 될 만큼의 존재감으로 굳건히 자리 잡은 ‘최대 교사 커뮤니티이자 정보 공유 사이트’가 하나 있다. 아마 굳이 이름을 이야기 하지 않아도 초등교사라면 그 이름을 바로 떠올릴 것이다. 만약 이 사이트가 잠시 동안이라도 접속이 차단된다면 대한민국 초등학교 교실의 상당수도 수업이 중단 될 거라는 말도 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사이트는 영향력이 거대하다.
내가 알기로 이 사이트는 처음에는 선배교사들이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에 길을 헤매고 있는 후배교사들에게 이전의 선배교사들에게 자신도 노하우를 나누어 받았던 것처럼 지금 자신이 알게 된 수업방법, 노하우, 자료 등을 나누어 주려는 마음으로 시작되었다. 선배교사들은 최대한 후배교사들이 잘 쓸 수 있도록 자신이 가진 콘텐츠를 “보기 좋게 포장”해서 전달하려고 노력했고, 후배교사들은 그 나눔에 감사해 했다. 한쪽은 나도 나눌 수 있다는 만족감과 뿌듯함으로, 다른 한쪽은 나도 잘 할 수 있다는 효능감과 일종의 소속감과 안정감 등으로 너도 나도 이 사이트를 찾았고 그렇게 이 사이트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다가 교사들의 콘텐츠도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사례가 일정정도 쌓여가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사이트에 있는 자료들을 스크랩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의 자료를 살짝 변형한 다음 자기 고유의 창작물인양 하여 ‘수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게 되자, 콘텐츠를 공유하던 선생님들이 처음에는 자신도 선배교사 혹은 스승에게 전해 받은 것을 그저 나누는 것일 뿐이라는 겸손한 태도를 보였었는데 점점 자신이 이 콘텐츠를 구성하기 위해서 들인 노력을 내세우며 점점 ‘스승’의 모습을 지우고 자기 권리를 강조하기 시작하였다. 자유롭게 수정, 배포가 가능했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자료 수정을 막아두거나 무단도용 시 법적 조치가 가능함을 적극적으로 알리면서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재기 발랄함이 넘쳤던 예전과는 달리 뭔가 콘텐츠들이 획일화 되어 가는 걸 느끼게 된 것이다.
나는 ‘지문(指紋)을 찾을 수 없게 된 획일화된 콘텐츠’들이 마치 복제물인양 여기저기 넘쳐나는 현실에서 ‘박동섭 교수님’의 책이 중요한 삶의 자세를 나에게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의 ‘추천의 말(우치다 다쓰루)’에는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모두 선현으로부터 배운 것이라서 나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은 없다’라고 말하는 공자의 자기 포지셔닝이 역설적으로 ‘가장 독창적인 말’을 할 수 있게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치다 선생에 따르면 학술 행위는 일종의 ‘증여’ 혹은 ‘선물’과 같다. 내 생각에도 우리가 선철로부터 받은 ‘선물’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 학술의 본질이다. (중략) 우리는 이미 ‘선물’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자신의 신체와 지성을 활용해 정성스럽게 다음 세대로 전달할 의무가 있다. 물론 전달할 때 무엇인가를 정성스럽게 곁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중략) 당신이 그동안 선물로 받아 왔던 ‘학술’을 당신이 온몸으로 살아 낸 개인사와 잘 버무려 사람들에게 내어놓은 모습(리본 달기 전략)이 참으로 고맙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본문 중-
‘개인 콘텐츠’로 수익 창출을 할 수 있는 시대에 자신이 하는 이야기는 오리지널이 따로 있다는 선언은 수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될 수도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학술의 본질을 이해하고 본문에 나온 것처럼 ‘겸손한 태도’와 ‘리본 달기’를 하는 사람만이 대체 불가능한 자기 고유의 말을 할 수 있고, 말 그대로의 의미의 ‘개인 콘텐츠’로 당당히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실제 현실에서도 이 사실은 그대로 적용된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스승님이 나에게는 두 분 정도 계시는데 그 중 한분이 바로 박동섭 교수님이다. 공공연하게 책의 제목에 ‘우치다 선생에게 배우는 법’이라는 선언을 할 수 있는 당당함이,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내가 혼자 만들어낸 나만의 것이라는 포지셔닝으로 세상에 넘쳐나는 복제물 같은 콘텐츠들’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박동섭 교수님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고유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다. 다른 한분의 스승님도 마찬가지다. 그 분도 늘 자신이 하는 이야기는 자신의 스승님이 하신 말씀일 뿐, 자신은 그 말씀을 정리만 했으며 자신은 거기에 딩신의 삶으로 체험한 것들을 양념으로 곁들인 정도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그분의 강의는 역시나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나도 지성이 가장 활성화 되는 위치에 올바르게 정위치해서 내가 살아낸 이야기로 멋진 ‘리본’을 만들어 나의 학생들을 향해 깃발을 높이 드는 교사가 되어야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