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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X3]서( S)평 쓰(S)는 선(S)생님

[SX3]스마트폰이 사라진 교실:새별초등학교 25년 생활부장의 스마트폰 프리스쿨 보고서-그런데 내가 새별초 학부모인 건에 대하여.

by Teachography 2026. 3. 23.


스마트폰이 사라진 교실: 다시 가상에서 현실로 배움과 관계를 회복하다라는 책을 만났다.

스마트폰 과의존 문제는 2026년 3월 현시점 전 지구적으로 상당수의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문제라서 이미 꽤 상투적이 되어버렸지만.... 스마트폰을 통한 경제적 이익창출 방법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대 및 확대됨에 따라 ...... 이제 사람들 마음속에 스마트폰으로 인한 사회문제들을 해결 할 의지도, 해결할 필요성도 희석되어 사라져 버렸다고 진단을 내려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이 사라진 교실"처럼 이렇게 하나의 완결된 논리구조 속에서 스마트폰 과의존 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과정을 엮은 책은 우리의 소중한 지적 자산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언어나 단순한 짧은 영상정도로만 이루어진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위험성 경고보다는 문제 인식 - 실행 준비 - 해결 방안 - 적용 발전의 형식으로 스마트폰 프리스쿨 프로젝트 실천사례가 공유되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보고서(스마트폰이 사라진 교실)의 내,외재적 목적이 무엇인던간에......

나와 이 책은 한가지 특별한 인연으로 이어져 있다. 아마 평생에서 두번 다시 만나지 못할 인연임에 틀림이 없다. 그건 바로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초등학교에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나는 이 책이 소개하는 스마트폰 프리스쿨이 펼쳐졌던 초등학교의 현직 학부모이다. 작가의 네러티브 중 소위 “진실성“, ”진정성“이라는 영역이 나의 경험으로 보증-검증 되는... 한번도 마주해 보지 않았던 특이한 상황 속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상당히 묘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다. 허나 그 진정성 영역의 후일담이나 평가 따위는 굳이 기록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무슨 논문심사자나 평론가, 독설가, 무지성 비난가, 악플러 등도 아닐 뿐더러 불필요한 언설로 말미암아 책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짓은 제 아무리 개인의 생각이었을 뿐이라고 자기방어를 한다고 해도 뒷맛이 상당히 개운치 않으니까 말이다.

AI시대니까 학교에서도 AI를 활용해서 교육해야 한다라는 1차원적인 접근과 학교는 사회의 경제적 요구에 적극적이고 최우선적으로 대응해야만 하는 기관이라는 물질만능주의적 시각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지금껏 "무슨 무슨 교육"이 유행할 때마다 그랬듯 학생들에게 1인 1태블릿을 보급하느라 다른 분야들의 예산을 모조리 AI기기 보급(차마 교육이라고는 못 부르겠다.)에 몰빵하는 현시대의 공교육 정책환경에서 이 책이 불러 일으키는 공기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귀하고 또 귀하다. 누가 이걸 강하게 밀어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제발...

 

그렇지만, 한가지. 꼭 집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이 있다.

 

스마트폰 과의존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하지만, 대부분 놓치는 부분에 대해서 꼭 지적을 하고 싶다. 솔직히 놓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스마트폰 과의존 문제해결이라는 과제에서 마저도... 교육적!!! 목적이 아닌... 그 놈의 'ㅂㅇㅁㅇ ㅅㅈ'이라는 개인적 목적 달성의 수단이기 때문에 안중에 없었던 것인지 좀처럼 헷갈리지만.

 

스마트폰 과의존의 극복은 아이들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게 하는 것으로 달성가능한 것인가를 생각해봐야한다. 스마트폰 중독의 본질은 스마트폰이 발신하는 화면을 아이들의 "눈"에서 치워내는 작업이 본질이다. 즉, 아이들의 눈이 디지털 컨텐츠를 수신하지 못하도록 차단시키고, 그 대신 다른 것들을 감각하게 하여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게... 최소한 교육기관이라면 해야만 하는 의무이다.

 

스마트폰만 손에서 놓으면... 아이들의 눈에서 디지털 컨텐츠를 차단할 수 있을까? 절대 절대 아니다. 아이들의 눈과 귀, 그리고 머리는 매일 최소 6시간 규칙적으로 디지털 컨텐츠를 수신하고 있다. 그것이 뭘까? 바로... 수업이라는 사태이다. 학교를 통해 아이들은 스마트폰 과의존이라는 그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약 10년 전부터 대한민국 공교육 교실에서의 수업이라고 부르는 행위는... 대형 스마트TV의 선명한 프리젠테이션 자료와 유튜브 영상으로 점철되어 있다.

멍하니 눈의 초점을 풀고 교실 왼쪽 상단에 위치한 TV화면을 한없이 한없이 하루종일 바라보는 것이 아이들의 일상이다. 무슨 공상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여 괴기스럽다고 여길수도 있는 바로 이 풍경이 바로 스마트폰 과의존 문제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심지어 왼쪽으로 치우쳐서 보면 자세가 삐뚫어진다고 요즘에는 칠판을 아예 "스마트"라는 이름을 붙여서 "스마트칠판"이라며 TV를 칠판 한가운데 아예 박아버리는 교실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심지어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학생 개개인에게 태블릿까지 나눠주고 있다. 교육예산이 한정적이니 우선 태블릿 구입이 시급하다면서 다른 예산들은 모조리 삭감되는데, 이상하리만큼 AI 관련 소프트웨어 및 AI기기 구입예산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정보화기기 보급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면서 교과서도 없애버리려는 준비도 시작하였었다. 또 공책도 없애버리려고 한다. 또 연필도 집어던지라고 한다. 친구들과 선생님이 교실에 함께 있지만, 발표도 댓글로 달라고 한다. 이야기 나누기도 바로 옆 친구의 목소리가 아니라 SNS를 통하라고 한다.

 

2010년을 지나면서 대한민국 학교의 수업이라는 행위는 이제 파워포인트와 유튜브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니... 조금 과격하게 표현한다면 PPT가 곧 수업이다. 물론 어디 초등학교 뿐이랴. 대학도, 기업도, 강의라고 불리는 그 모든 것이 PPT화 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소위 "수업자료 공유"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였다. 솔직히 "수업자료 공유", "강의자료 공유"는 이제 신조어도 혁신적 개념도 아니다. 그냥 당연한 공기와도 같은 그 무엇으로 교직사회에 자리잡았다.

 

수업자료의 공유라니... 수업은 교사의 온 삶을 통해 하는 것이고, 수업자료는 그것을 위한 상당히 사적인 그 무엇일텐데... 그걸 공유한다는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황할 필요가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PPT가 곧 수업이다. TV화면에 띄워놓은 PPT와 중간 중간에 재생되는 유튜브 영상이 수업의 전부라면... 이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누군가 PPT만 공유해주면, 서울의 어떤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이 광주의 한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지게 된다. 교사가 누구냐보다는 PPT가 무엇이냐가 수업을 결정하는 단 하나의 요소인 것이다. 유행하는 PPT 제작자(교사)가 있고, 특정 교사를 구독 및 좋아요 한 채 "올해는 이 선생님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수업 준비-실행이라는 루틴이 되어 버린지 오래된 교사들이 넘쳐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수업은 굉장히 사적인 것으로 활동한다. 아니 사적인 것으로밖에 하지 못하는 활동이다. 공교육에서 무슨 사적이냐고 할 수 있으니 문학적으로 표현하면 좀 이해가 쉽다. 교육은 영혼과 영혼이 공명하는 활동이라고 하면 좀 더 와닿는 듯 하다. 그런데, PPT라니... 그것도 최소한 내가 구성한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아이들은 스마트TV화면을 통해 무엇을 만나고 있는 걸까?

 

스마트폰프리스쿨을 위한 계기교육을 PPT와 유튜브 영상을 보며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밖에 하지 못하는 이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걸까?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체벌과 함께하는 것 같은 이 부조리한 상황을 보고 우리들은, 학교는 뭐라고 답해야 하는 걸까? 아이들 손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게 하는데서 그치는게 아니라 다음 본질로 나아갈 수는 없는걸까? 아이들 눈에서 디지털 컨텐츠를 걷어내 주는 것은 불가능한 상상일까? 아니 애초에 나를 비롯하여 현대의 교사들에게 그게 가능한 일이기는 할까? 

 

이 책이 종착지가 아닌 그 시작이 되길 희망하여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