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라는 수준의 배경지식
도서관과 사서에 대해서 나는 그다지 생산적인 앎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걸 책 제목을 보자마자 새삼 깨닫는다. 굳이 이야기해보자면... 우리나라에는 사서-실무사와 사서교사가 있다는 가쉽성 정보가 전부이다. 실무사는 '채용'의 개념이고, 교사는 '임용'의 개념이라 그들의 신분이 좀 다르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나 같은 사서라서 동질감을 느낄 것 같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제로는 서로가 그리 친하지는 않다고 한다. 교육청 연수를 위해 한자리에 모일 때 서로가 마치 다른 직군인 양 경계를 뚜렷하게 갈라 내외한다고 한다. 또한 요즘에는 사서교사, 영양교사, 보건교사처럼 새롭게 교사의 이름으로 임용된 비교과교사들이... 교사의 이름이 붙지 않았을 때처럼 사서의 일, 영양사의 일, 보건업무의 일만을 하는게 맞느냐, 아니면 교사로 임용되었으니 수업을 병행해야하는게 맞느냐로 논쟁이 불거졌다는 소식들을 여기저기에서 듣고 기억하고 있다.
역시 적어놓고 보니 남을 험담하는 수준의 가쉽성 정보뿐이다.
2. 진짜로 처음 듣는 이야기
제목이 상당히 매력적이다. 제목과 한치도 다름없이 처음 듣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한다.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라니... 누구라도 멈추는 눈길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나는 이것이 처음 듣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항상 듣고 싶어했던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디에서 들어 본 이야기라서가 아니다. 정말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물론 우치다 타츠루 선생님의 글을 이전에 몇 권이나 읽었고, 번역하신 박동섭 교수님 글과 이야기를 몇 십번이나 들었기 때문에 문체라고 해야할까?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너무나 익숙했지만 정말로 정말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하지만...거듭 강조하지만 이 이야기는 정말로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이야기가 분명하다. 어찌 내 마음을 이렇게 하셨을까... 신묘한 일이다.
3.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 전에 글쓰기부터
다양한 글쓰기가 유행하고 있다.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는 수단이 다양해지고 절차가 간소화되는 한편 그에 따른 수익성도 여러 방편으로 추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적에 의해 자신의 이야기를 바로 그 목적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엮어내고 있다.
나의 글쓰기는 모방의 길을 걷는 것이었다. 나도 누구누구처럼 글쓰기를 하겠다며 그들의 방식 몇 가지들로 글을 써왔다. 지금 쓰고 있는 이 블로그 글도 따라해 온 글쓰기 방식 중 하나이다. 한참 열심히 글을 쓰던 때도 있었다. 하루의 마무리를 글쓰기로 하던 때도 있었을 정도니까. 하지만 어느새 지루해지면 다른 방식을 모방하기 시작했고 기존의 방식은 한쪽 구석으로 치워진채 거의 찾지 않은채 방치되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모방했던 것이 그들의 글쓰기 방식이 아니라 사실은 그들의 "목적"을 따라했기 때문인 것 같다. 더 정확히는 그 사람이 이룩한 성과들을 동경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부터는 나만의 목적을 추구하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식의 다짐의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글쓰기의 목적이 나의 글쓰기와 잘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지, 글쓰기의 목적과 그 성과들을 동경하며 글쓰기를 하는 것은 나쁘고 좋고가 아니라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테니까 말이다.
우치다 선생님의 글쓰기 목적은 어떠한가? 우치다 선생님의 글쓰기는 "전도"라고 한다. 시장의 수요와 상관없이 아무도 바라지 않는데도 발품을 팔고 심지어 자신의 돈을 써 가면서 "꼭 하고 싶은 말"을 "부디 읽어 주세요"라는 간청하는 자세로 (자가출판으로라도) 인쇄하고 배포했다고 한다.
나에게는 길가는 사람 소매를 붙잡고 "부디 읽어 주세요", "부디 들어 주세요"라고 말할거리가 있을까?
내가 말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라는 절박함이 있을까?
무언가를 나만 알고 있으면서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한채 그들을 한심하게 내려다보려는 지적 허영심의 쾌락이 아닌 나의 말과 생각에 대하여 동의하는 사람을 한사람이라도 늘리는 것이 행복이라고 느낄만한 정신적 안정감이 나에게 있을까?
글쓰기에 앞서... 우선... 그리고 계속 묻고 답해야 할 일이다.
4. 종교교육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
외국의 교육사례, 더 정확히는 외국학교의 커리큘럼을 보면 항상 함께하는 것이 바로 다름아닌 "종교교육"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종교교육, 영성교육이 함께 한다. 우리나라 학교교육과 가장 큰 차이가 체감되는 요소들 중 으뜸은 역시 종교교육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는 종교교육이 미션스쿨이 아니고서야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아니... 종교교육을 시도했다가는 파면당할지도 모르는 것이 우리나라 학교의 현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은 무균실과 같다. 지적인 교육이 순수한 교육이라고 믿고 오로지 순수교육만이 학교교육의 영역이라고 모두가 믿고 있는 듯 하다. 종교교육을 시도하는 선생님이 있다면... 물론 우연히 같은 종교를 가진 학부모에게는 환영받을지도 모를일이지만, 그 외의 경우라면 곧바로 민원사항이다. 민원이라고 하니 너무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인터넷 커뮤니티 혹은 신문기사에 나고, 상급기관의 감사까지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신성한 학교에서 어디감히 선생님 개인의 종교를 주입하려 하느냐고 말이다. 종교교육만 그러한가... 정치교육도 금기시 되어있다. 신성한 학교에서 아직 미성숙한 아이들에게 일개 개인인 선생님의 정치적 신념을 주입하려 한다고 난리가 날 것이다. 종교교육은 어찌저찌 용서가 될지 모르나 정치교육은 참말로 학교가 뒤집어질 일이다.
한국의 학교가 지식교육만을 하는 비교육적인 기관이라고 몇 십년째 틀에 박힌 비난을 누구에게나 듣고 있지만 실제 현실은 지식교육 외적인 교육이 뿌리내릴 토양자체가 없기에 지식교육 외에는 다 말라 비틀어져 죽어버린 것이 바로 우리나라 학교교육의 현재 모습 아닐까?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교과서 진도를 기본값으로 각종 지필평가에서 고득점을 획득할 수 있는 지식을 입력-출력하는 것 외의 예체능 교육도 말라 비틀어져 뒤틀린 채 왜곡되어 있는 건 마찬가지다. 학생 개인의 커리어와 포트폴리오에 관련되어 있거나, 학교관련 이익집단들의 파워 게임 내지는 파이 늘리기의 일환이 아니라면 예체능 교육에 힘을 주어 일명 주지교과에 해(?)를 끼치는 것은 신성모독이 된다. 종교교육이나 정치교육처럼 퇴출대상으로 지목되지는 않겠으나, 학교교육의 장애물이나 시대의 지체자로 손가락질 받는 것은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그러나... 그런 엄혹한 시대의 학교라서 용기를 못 낸 건 아니었다. 실제 이유는 나 스스로 종교교육, 영성교육에 대한 당위를 마음 속 깊이 공감하지 않았었다는게 진짜 이유이다. 나 스스로 깊이 납득했다면 의외로 나는 용기를 냈을 것이 분명하다.
우치다 선생님이 들려주신 옛날 사대부가 배워야 할 과목 중 "육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인간의 상식을 넘어선 것을 섬기기 위한 옳은 방법을 배우는 것이 첫번째라는 이야기에서부터 시간 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음악을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 그렇구나... 용기를 내어 한번 나아가도 되겠구나... 아니.. 나아가야겠다라는 다짐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5.마치며
우치다 선생님은 학교 안에 양호실과 같이 다른 세계가 하나 더 있어도 좋지 않느냐고 말하신다. 그리고 학교의 규칙, 학교가 설정한 목표, 학교의 가치관,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운영, 성과주의 등을 요구하는 교장의 말을 들으면
"저는... 마법사라서 말이죠... 미안한 말이지만 거기는 결국 세속의 이야기죠. 도서관은 그곳과 달라요. 저는 어떤 업적을 올렸는지 증거가 이러쿵저러쿵, 수치가 이러쿵저러쿵, 평가가 이러쿵저러쿵 등등과는 전혀 관계없는 차원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봐 주길 부탁합니다."
라고 말하라고 조언한다. 학교는 여하튼 여러 선생님이 다양한 가치관과 잣대를 가진 편이 좋고, 가치를 재는 척도가 다른 이들이 많은 가운데서 자라야 아이들은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교 교육을 생각한다면 학교 안에는 무조건 '마법사'가 있어야 하지만, 현 시대의 학교 선생님은 미스터리한 것을 금지당하고 있으니 도서관이 미스터리를 담당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그렇다... 마법사... 다른 세계의 사람인 마법사... 현 시대의 학교 선생님들이 마법사가 되는 것을 금지당하고 있다는 것을 올해 뼈져리게 느낀 나에게... 왠지 그리움이랄까... 뭉클함을 느끼게 만든다. 마법사까지는 아니었어도... 그 쪽 계열의 무엇이었을 내가... 올해 강력한 금지주문 공격을 받고 잠시 주춤한 사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멈춰주지 않았다.
나는 학교에서 과연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만 하는 걸까 고민하며 찰나의 순간 갈팡질팡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시간은 저만치 앞서가버렸다. 이미 나를 앞질러버린 시간을 다시 붙잡을 수 있을까?...
......역시 방법은 그것뿐인가...
다시 마법사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