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꿈몽글
- 출판
- 파람북
- 출판일
- 2023.12.01
학폭교사 위광조!!!
파랑색 표지에 빨간글씨... 학폭.... 한 권의 책이 내 눈에 퍼뜩 띄었다. 23년 교육계를 뒤집어 놓았던 사건들의 공통 키워드인 학교폭력이라는 단어 때문은 아니었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포인트는 바로 "소설"이었다. 현직 교사가 소설의 형식을 통해 써내려간 책이 나왔다는 사실에, 나는 고무되었다.
"교사는 자신이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으로 기록하고 공유해야만 한다."
'교사의 글쓰기'는 상당수의 교사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이다. 자신의 학술연구를 정리한 글쓰기, 교육실천결과나 수업기술과 방법 등에 관한 글쓰기, 교사의 에세이, 교육법이나 교육행정절차 같이 교육과 관련된 정보들을 전달하기 위한 글쓰기, 자신이 만든 수업 자료를 공유하는 글쓰기 등 교사들이 세상에 내놓는 글쓰기는 당연하게도 교사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나는 교사들 각자가 자신만의 목표, 소망, 지향을 가지고 세상에 내놓는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들을 오랜기간 살펴보아왔다. 그 때마다 내 마음은 크게 움직였고 그 덕분에 더 좋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뭔가 허전한 기분도 함께 커져만 갔다. 교사로 살아온 지난 10년 간을 돌아보면서 뭔가 다른 형식의 글쓰기가 우리(교사들)에게 필요한 건 아닐까라는 목소리가 내 안에 점점 자라났기 때문이었다.
내 목소리의 결론은 "소설"이었다.
잠깐!!! 오해가 생길까 급하게 첨언하자면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바는 꿈몽글 팀의 위대한 업적을 '아~ 이거? 이미 내가 다 생각했던 건데?' 라는 태도로 김빼거나 폄훼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내 생각에만 머물렀던 것을 실재하는 작품으로 현실에 내놓은 꿈몽글 팀의 업적에 대한 성실한 감탄을 하고자 함이다.
다시 돌아가서... 나는 소설이 교사 글쓰기의 주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교육이 위기라고 한다. 교실 붕괴, 학교 무용론이라는 단어가 뉴스와 사람들 입방아에 오른지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진부한 이야기가 되었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세계 여러 나라의 교육현실을 잘 알고 있는 분이 말씀하기로는 교육위기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 세계적 추세라고 한다. 그렇다면 2000년 이후 전지구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교육위기는 무엇 때문에 시대적 유행으로 자리잡았을까? 학교라는 곳 안에 내재된 수많은 문제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고 그동안은 감춰져 있었다가 더 이상 막지 못해서 곪아 터진 것 뿐인걸까? 약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공교육"이라는 사회시스템이 구조적 한계 때문에 이제 유통기한이 다된 것일 뿐인걸까? 교육의 위기... 좀 더 정확히 학교의 위기를 극복해 보려는 생각은 역사의 뒤안길로 진즉 사라졌어야 할 공교육과 학교를 놓아주지 못하는 미련한 미련인걸까?
우치다 타츠루는 교육이란 공공의 사업이라고 말했다. 교육은 본질적으로 그 결실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돌아가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공공의 사업이라는 말은 '전체주의, 국가주의 아니냐'고 공격받기 딱 쉬워서 꽤 많은 부연설명이 필요하지만... 본 글의 논점과는 조금 다른 주제이니 일단 넘어가겠다.
전세계적으로 배타적 국수주의를 앞세운 극우세력의 힘이 커지고 있다. 그러한 정치적 상황에서 이미 극단으로 치닫던 개인주의를 넘어선 이기주의와 자기중심주의는 보편 상식의 위상으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너 왜 이렇게 이기적이야?"라는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이 사라져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염치있게 한 발 물러서기 보다는 "이기적인게 왜 문제인데?",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야", "내 맘이야, 상관하지마", “니가 뭔데 주제넘게 참견이야?”, “나한테 주제넘게 말을 거는 너가 더 무례하고 이기적인 거 아니야?”라며 오히려 내가 두, 세 발 물러나게 되는게 지금의 현실이니까 말이다.
교육의 위기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닐까? 본질적으로 공공선의 증진을 작동원리로 하는 교육과 사회적 자원의 독점만을 목표로 추구하는 사람들의 욕망이 서로 사맛디 아니하기 때문에 탄생한 필연적 위기 아닐까? 교육의 위기를 극복하겠답시고 지금 시대의 요구(욕망을 채워주는 도구적 역할)에 교육이 부응하려고 그 뒤를 바짝 쫓으려 하면 할 수록 교육의 위기는 점점 더 심해질 수 밖에 없는 모순적 상황인 건 아닐까? 그렇다면 교육의 위기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공공의 사업이라는 개념에는 학생의 관점뿐만 아니라 교사의 관점까지 포함된다. 교사도 교사개인이 아니라 교사단으로서 함께 교육한다는 연대의식과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개별 학생들이 교육적 성장을 이루게 되는 것은 특정 시기에 특정 장소에서 만나는 특정 교사 개인의 뛰어난 개인기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학생이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교사들 전체가 길다란 시간선 위에서 연결된 채 만들어 내는 교사단에 의한 것일테니 말이다. 그렇게 교사는 개인이지만 또한 전체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별 교사의 역량을 증진시키는 것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단 수준의 질적 성장이 필수적이다. 오직 교사단의 계속된 질적 성장을 통해서만이 시대 정신을 교육계에도 붙잡아 둘 수가 있다. 교사들의 과제는 명확하다. 개별 교사의 성장이 곧 교사단 전체의 성장이 되도록 해야만 한다. 그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교육 전문가로서의 지위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회복??? 언제 교육 전문가였던 적이 있었나 싶지만)
무엇이 전문가를 전문가로 만드는가? 대표적 전문가 집단은 누가 뭐래도 의사와 판사-검사-변호사이다. 엄격한 자격면허시험이 가장 큰 특징인 이들 집단의 전문성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건 바로 사례 관리와 연구이다. 이 특성으로 인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전문가 집단의 진입장벽은 높아지고 전문성은 심화와 강화가 이루어 진다.
교사의 현주소는 어떤가? 사례관리와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물론 당연하게도 체계적이고 활발하게 진행되는 분야가 있긴 하다. 교육과정과 수업방법, 수업기술, 수업평가 등이 속해있는 영역의 활동이 바로 그것이다. 이 영역의 활동만 보면 우리 교사들도 전문가 집단처럼 보인다. 의사가 최신의학 논문과 세미나, 수술법 전수, 최첨단 의학장비 도입을 하듯, 판사-변호사들이 헌법을 연구하듯 교사들도 국가수준 교육과정에서부터 교육과정 각론의 세부교과내용을 연구해 나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의료계, 법조계에는 존재하지만, 교육계에는 전무하다시피 한 것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빈약하기에 교사집단이 사회적으로 전문가 집단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른바 개별 사례관리와 연구이다.
의료계는 환자들의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해 나가고 이를 바탕으로 임상연구나 환자를 치료해 나간다. 법조계는 각종 사건과 판례를 축적해 나가고 이를 바탕으로 재판에서 헌법정신을 세우는 동시에 사회정의를 실현시켜 나간다.(...)
만약 교육계에도 대표적 전문가 집단인 의료계와 법조계의 데이터베이스에 대응하는 데이터베이스가 존재했다면 그곳은 다름 아닌 학생의 차지였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교사 개인이 파편적으로 기억하는 특정 학생과의 추억들이 교사의 은퇴와 함께 휘발되어 사라져버리는 과정의 반복말고는 다른 건 없었다. 슬프게도 앞으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만약 학생들의 개별적 특성과 그 학생들의 학교생활 모습, 수업과 생활지도, 교우관계에 의한 변화 과정과 성장 등이 교사 집단의 단위에서 지금까지 축적되어 왔다면 어땠을까? 학생 사례가 관리되어 유의미한 수준의 양이 축적되고 나면 그 안에서 인간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의 실마리들이 피어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수업들이 진정 학생 중심 교육으로 도약해 갈 수 있지 않았을까? 당연히 교사는 누가 뭐래도 교육 전문가로 제 역할을 해 나가고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학생에 대한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배경과 함께 사건을 자세히 기술하고 학생의 행동과 교사의 교육적 조치와 친구들의 리액션을 서술한 뒤,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반응했고 시간이 흘렀을 때 지금 사건에 의해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기록했다.
그러나 위험부담이 있었다. 데이터베이스화 하려면 디지털화해야하고, 공유하려면 인터넷 공간에 업로드해야만 하는데... 아무리 내 SNS가 세상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학생에 대한 사례 기록을 가명으로 처리한다고 해도 만약 당사자에게 알려진다면 그 부모와 학생은 자기 이야기인지 알 수밖에 없기에 괜한 송사에 휘말려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2년 정도는 비공개로 작성해 두었다가 유예기간이 끝나고 공개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2년이면 과연 안전한게 맞을까?라는 의문이 생기면서 아무런 확신이 들지 않고 고민만 커져갔다. 고민하다 고민하다...
내 고민에 대한 결론은 "소설"이었다.
소설이라면... 아니 소설일 수밖에 없다. 교사의 학생에 대한 소설은 그렇게 나의 길이 되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외롭게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바로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현직 교사가 소설로 쓰고 그린 학교폭력 보고서라니... 교사가 소설로 쓰고 그린 이라는 문구가 앞으로 교사 글쓰기의 주류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시작으로 이제부터 교사라면 너도나도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그렸으면 좋겠다. 꿈몽글 팀의 작품로부터 시작된 우리 교육에 대한 희망의 불씨가 활활 타올라 교육으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궈냈으면 좋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