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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X3]서( S)평 쓰(S)는 선(S)생님

[SX3]야누시 코르차크-아이들을 편한 길이 아닌 아름다운 길로 이끌기를 : 위기의 시대 교사의 과제는 무엇일까?

by Teachography 2023. 11. 16.


1. 남자의 몰락 또는 남성성의 몰락


나는 남자다. 다행히 내가 남자라 요즘처럼 남녀갈등이 날카롭게 대두되는 현실 속에서 “남자의 몰락” 같은 민감한 말들을 꺼내도 극단적 오해나 큰 무리가 생기지 않을테니 마음이 사뭇 편안하다.

물론 남자라는 사회생물학적 개념에 의한 구분법으로 인해 내가 남자로 분류되어 있다고 해서 함부로 특정 집단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내부고발자인양 이야기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내가 한 집단에 속했다고 해서 그 집단을 멋대로 비난해도 되는 면죄부를 자동으로 부여받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속하지 못한 집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할 수 있을 듯 하다. 누가 뭐래도 나도 남자니까.


상당히 과장된 표현이 분명하겠지만… 현시점에서 남자라는 사회적 존재는 몰락해 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ADHD는 남자에게만 발생하는 질병(?)이 아니며, 어린아이에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닌 성인기까지도 이어지는 질병(?)임에도 불구하고 약 15년의 교직 생활 속에서 만났던 ADHD로 심각한 모습을 보이는 학생들은 모두 “남자”아이였다. 아무리 여자아이에게 나타나는 ADHD는 그 증상이 남자아이에게 나타나는 증상과 다르다는 것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이성적-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노력해 봐도 학교현장에서 남자아이가 보이는 ADHD 증상들이 교실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현실에서는 "ADHD는 남자아이에게만 보인다"는 편견이 내 안에서 점점 강화되고 있다.

내가 아는 어떤 교육실천가는 울면서 쓴다며, 최근 “남자”아이들의 상태에 대한 동료 선생님들의 절규를 SNS로 포스팅 하였다. 그곳에는 서울 중산층 밀집 대형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의 ”남자 아이들 절반은 재정신이 아니야…“ 라는 말이 가장 첫번째로 적혀 있었다. 그 다음은 도농복합지역 교실 모습에 '할말하않'이라고 말을 잇지 못하는 내용이었고, 마지막으로 경기도 도농복합지역의 중학교의 교실은 아수라장 딱 그 말 그대로라며 중학생 남자 아이들의 심각한 상태를 적어놓았다.

어린 남학생들만 문제인가? 최근 정치권에서 이대남이라고 불리고 있는… 앞서 소개한 남학생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어 형성한 a.k.a ”이대남“이라는... 집단도 눈에 띄는 모습들을 많이 보이고 있다.

불과 1년 전쯤 연세대에서는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해 달라며 시위하는 청소노동자들을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연세대 학생이 고소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시끄럽다는 이유에서였다. 당당히 인터뷰한 자료도 있어서 그 속내를 알게 되었는데... 정당하게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서 공부하려고 했는데 청소노동자들의 시위소리에 집중이 안되어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내가 주목한 것은 "정당한 비용을 지불"했다는 태도였다. 정당한 비용을 지불했기에 청소노동자에게 공감할지, 고소를 할지, 불만은 있지만 참을지 따위는 알아서 할테니 참견하지 말라는 태도였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얼마전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리뷰 채널을 하나 보여주었다. 메인 주제는 앞칸 사람들과 꼬리칸 사람들 중 진짜 악은 누구인가 라는 내용이었다. 솔직히 유튜브 댓글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100% 알 수가 없지만... 남자 프로필을 가진 사람들의 댓글들을 그대로 남자라고 해 보면... 남자들의 댓글 내용 대부분이 연세대 고소남과 사고 구조가 매우 닮아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체재전복과 혁명을 꿈꾸는 꼬리칸 사람들이 사실 진짜 악이고, 앞칸 사람들은 무구하다는 것이 주요 논지였다. 왜냐하면 앞칸 사람들은 "정당하게 비용을 지불"해서 앞칸에서 당연한 권리를 누리고 있는 것 뿐인데, 무임승차하고 있는 꼬리칸 사람들이 앞칸으로 억지로 건너와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는 조금만 찾아봐도 끝이 없이 발견된다. 일베로 대표되는 폭식맞불집회같은 폐륜적 행위 등이 바로 그것 중 하나이다.

물론 여자로 그룹지어 여학생과 이대녀들의 문제적 행동도 어렵지 않게 반례로 꺼내들 수 있을 것이고, 모든 이대남이나 남학생들을 단순히 "이대남"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의 균질성 따위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언론에 노출되는 일부 남자들의 행동은 빙산의 일각일 뿐 사실 실체는 드러나는 문제적 모습과 완전히 다를지도 모를 일이다. 그저 언론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보조작 및 선동에 무비판적으로 빠져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남학생들에 대한 편견에 별다른 저항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은 학교 현장에서 그러한 편견을 강화하는 사례들을 매일매일 무수히 만나기 때문과 다름 아니다. 교실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하는 그 학생들에 괴로워하면서, 옆반이나 같은 학교 다른 학년의 끔찍한 사례를 전해 들으면서 편견은 그렇게 사실이 된다.

구성원의 질이 나빠지면 반드시 그 집단은 내부로부터 무너져 몰락하기 마련이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남자라는 사회적 집단은 몰락해 가고 있는게 아닐까?

위기는 실재일까? 허상일까?


2. 위기를 온 몸으로 받아내는 사람들


좋은 학군이 아닌 곳에서의 꾸준한 실천으로 유명해진 교사를 10년 전쯤 우연히 읽게 된 책 속에서 알게 되었다. 바로 미국의 에스퀴스 선생님이다. 위험한 동네라며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의 변화를 이끌어낸 선생님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 야누시 코르차크라는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홀로코스트의 광기 속에서 아이들 곁을 끝까지 지켰던 분이라고 한다.

두 선생님을 소개한 책에서 한가지 소소한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평범한 곳이라면 문제의 소지가 있을 교육활동에서 변화의 싹의 생명을 틔었다는 것이다. 에스퀴스 선생님은 "경제 시스템"을 교실에 도입하여, 아이들에게 월급을 주고 교실 책상을 부동산처럼 거래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코르차크 선생님은 도박장을 열어 아이들과 내기를 하며 아이들의 변화를 도모하였다.

교실을 돈이 지배하는 세계로 만들고, 교실을 판돈이 오가는 도박장으로 만드는 일은 일반적인 교실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아니면 학교와 학부모들에게 교육적 배경을 설명하느라 꽤 많은 기력을 소진해야만 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 선생님들은 이상한(?) 교육적 실천을 통해 위기 속 아이들과 함께 위기의 순간들을 살아냈고,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 내었다.


나는 두 선생님의 공통점 속에서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23년 지금의 교실은 위기에 놓여있다. 말을 들어보면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고, 전세계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지경에 놓여있다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학부모의 갑질, 교권침해, 교육에 관한 정치의 부재, 교육의 도구화-수단화로 인한 본질의 왜곡 등이 교실의 위기를 강화하고 있는데... 유럽이나 미국 등도 비슷한 방향으로 악화되고 있다고 하는 걸 보면 하나의 거대한 시대적 환경의 변화 속에 우리가 놓여 있는가 보다.

그러나 외부의 요인 뿐만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주체인 학생 자체도 뭔가 망가져가고 있는것만 같다. 물론 교사집단도 질적으로 좋아지고 있냐라고 한다면...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SNS에서 높은 공감을 받은 교사의 글을 읽어보면 같은 교사지만 부끄러움을 많이 느끼게 되니까 말이다.

나는 교사니까 교사의 과제를 생각해 보게 된다. 위기 속 교실에서 과연 교사는 어떤 실천을 해야만 할까? 확실한 건 껍데기만 바꿔서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미래나 A.I, 4차 산업혁명 따위가 아니라 위기를 온몸으로 받아 안으려는 교사의 실천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코르차크를 공부한 최민혜 선생님은 공감, 대화, 관찰, 기록, 동행, 존중 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하였다. 코르차크의 발자취를 본받아 2023년 대한민국의 교실에서 나라는 교사는 어떤 실천을 해야만 할지 고민에 빠진다.

그 고민은 에스퀴스 선생님이나 코르차크 선생님처럼 경계를 넘나드는 수준이어야만 하지 않을까? 교실의 아이들에게서 위기가 느껴진다. 뭔가를 해야만 한다. 뭐라도 그 너머를 해야만 한다.

코르차크의 삶이 나를 이끌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