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정채윤. 4학년 여자아이다. 이야기는...전형적이라는 말이 미안하지만, 말 그대로 전형적인 타임루프물이다.
타임루프물이 동화책으로 나오다니... 단번에 나의 흥미를 사로잡았다.
제목 그대로 우연히 발견한... 아니 과연 주인공이 발견한 것은 맞나? 주인공이 선택되어진 건가? 왜 선택된 걸까? 끝없이 이어지는 의문이 구만리도 넘지만... 어쨋든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로서의 책을 주인공이 발견하게 된 후 벌어지는 사건들이 흥미롭게 펼쳐지는게 바로 이 동화책이다.
타임루프라는 설정은 지금껏 소설, 영화 등에서 몇 십년.. 아니 백 몇년동안 작가들에게 쓰였던 소재이다. 그 만큼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가지의 변주가 있었다는 것이고, 그 오랜 시간동안 꾸준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아주 매력이 넘치는 장치라는 말이다.
하지만, 타임루프물은 굉장히 까다롭기도 하다. 굉장히 중대한 한가지 결함을 이야기 내에서 해결하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타임 패러독스"
유능한 이야기꾼들은 지금껏 자신의 작품이 내부에서부터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기 위해 타임 패러독스를 해결하기 위한 수많은 장치들을 견고하게 구축한 후 이야기를 들려주었었다.
그 장치들의 정교함에 반하거나, 아니면 너무도 간결한 규칙 하나만으로 타임 패러독스를 해결해 버리는 기발함에 감탄하거나 하면서 타임루프물들은 엄청난 매니아가 생겨났다.
나도 그 중에 하나다. 나의 인생영화 TOP 3가 모두 타임루프물일 정도로 나는 타임루프물에 마음이 크게 움직인다. 그런데... 그런 타임루프물이 동화책으로 나왔다고??? 나같은 타임루프물 매니아에게는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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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책은 나같은 타임루프물 매니아에게는 조금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쉽게 말해 타임 패러독스를 깔끔하게 해결하지 않은 채 이야기가 구축되었다는 느낌이다.
작품에 대한 감상은 무엇에 공감하고, 무엇에 매료되었는지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동반사처럼 "타임루프"라는 소재에 집중해 버렸기에 작가의 문체나 이야기 전개방식, 주인공의 심정의 변화, 사건의 흐름 등등에 빠져들 수 없었다. 타임루프라는 매력적인 방식이 독이 든 성배-양날의 검이기 때문은 아니었을지...
타임루프라는 소재가 아니라 주인공의 서사에만 집중했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동화겠지만, 타임루프를 좋아하는 걸 어쩌란 말인가...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타임 패러독스 자체를 독서토론의 주제로 삼을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앗 잠깐만... 혹시 작가는 일부러 타임패러독스를 해결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전개시켜놓고, 독자들이 동화책 속에 존재하는 타임패러독스에 대해 열린 이야기를 나누길 바랬던 건 아닐까?
예를 들어
1.운명론이 지배하는 세계(죽음만은 막을 수 없다.)에서 인간의 선택(시간여행)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2.시간여행은 정해진 운명을 바꾸는 일인가? 아니면 시간여행 자체도 운명의 일부인가?
3.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수명(시간책의 페이지수)을 조작 가능하다(페이지를 찢거나 붙이는 것)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등등
덩치가 있는 주제에서부터
4.절대 바뀔 수 없는 미래(죽음 등)가 시간여행자의 선택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것(자동차 사고, 오토바이 사고 등)은 절대 바뀔 수 없다는 대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아닐까?
5.시간여행 이력은 개인의 시간책에 기록되는 사항일까? 아니면 시간여행을 하면 개인의 시간책의 내용도 사라지는 걸까?
6.또다른 주인공인 이하늘 선생님은 20년 전으로 9번을 되돌아갔지만, 다시 현재로 돌아온 적은 없다. 그렇다면... 이하늘 선생님은 20년을 9번이나 반복해서 살았다는 것인가? 무려 200년을 살아온 이하늘 선생님의 영혼은 31살인가? 201살인가? 등등
작가들이 타임패러독스를 해결하지 않은채 서사를 전개시켜놓았기 때문에... 이야기할 거리가 산더미이다. 정말 그렇다면 이건 정말 신선하다. 작품의 모순이 독자의 결핍이 되어 이야기를 자극하다니.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시길... 작품의 구멍 메우기에 함께하며 이야기 나누는 재미에 함께하길 기대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