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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X2]선(S)생님의 시(S)선

[SX2]자율연수비 유감:자율이 아닌데 자율인척 하는 연수비 지원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들. 효과성과 실효성이 없다는 건 자기들도 인정하지만, 그럼데도 불구하고 바꾸지는 않겠다고 한다...

by Teachography 2022. 1. 7.

학교는 공공기관으로 규정에 따라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필수 사업들을 비롯하여 여러가지 권장 사업이 학교별로 시행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예산은 '예산편성 메뉴얼'에 명시된 세부규정에 따라 편성·운영된다.

 

그 중에서 상당히 유감스럽게 운영되는 하나의 사업을 최근에 '인식'하게 되었는데 

 

바로 "교원 자율연수비 지원" 사업이다.

 

"교원 자율연수비 지원 사업"이란?

교원 전문성 향상에 따른 공교육 내실화를 기대하며, 교원 연수 선진화방안에 의해 교원 1인당 1년에 최대 25만원 정도를 교과교육, 생활지도 및 상담 등의 역량 강화를 위한 자율연수비에 사용할 수 있게 지원하는 사업이다.

 

자율연수비 지원 사업의 예산 편성 기준은 다음과 같다.

이와 같은 예산편성기준을 바탕으로 단위학교에서는 학년 초 학교 내부 협의를 통해 자율연수비 지급 기준을 수립하여 운영하게 된다. 필수 사업이 아니라 학교마다 사정은 다르겠지만, 최근의 추세는 운영하지 않는 학교가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며 예산의 수준도 상당수가 1인당 최대치인 25만원을 편성 운영할 것이다.

 

 

1. 교사연수라는 생태계

교사들은 1년 동안에 필수로 이수해야만 하는 연수시간이 정해져 있다. 자율적 연수를 통해 교사로서의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교육과 관련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하도록 독려하여 궁극적으로는 공교육과 교사전체의 경쟁력(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엇에 대한 비교우위를 목표로 경쟁하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든다...)을 제고하기 위함이라 한다.

 

학교별로 필수 연수이수시간 기준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략 90시간에서 120시간정도가 일반적이다. 연수 이수결과는 각각의 교사 개인이 "이런저런 연수를 들었습니다."라고 자율적으로 이수증 등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수집되지 않고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통해 중앙집중식으로, 전산화된 방식으로 관리된다.

 

그럼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이하 NIES)에 교사개인이 자기 책임하에 연수결과를 등록하느냐 하면 당연히 아니다. 각 시도별 교육연수원 같은 곳에 NEIS 입력 권한을 가지고 있는 담당자가 있는데 그 사람에게 연수결과가 통보되면 특정 책임자가 입력해 넣는 방식이다.

 

또 그럼 NEIS 접근 권한을 가지고 있는 담당자에게 개인이나 단위학교에서 연수결과를 잘 모아서 통보하면 되느냐 하면 또또 역시 당연히 아니다. 뜻이 있는 누구나 교원의 직무수행 능력 향상을 위한 연수를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기획하여 계획대로 추진한 뒤에 교육연수원에 연수결과를 보고하는게 아니다. 연수생을 모집한 뒤 연수를 진행할 자격을 갖춘 기관만이 연수가 종료된 뒤에 연수결과를 종합해서 '보고'할 수 있다.

 

또또또 그럼 그 자격은 어떻게 획득하느냐하면 그게 좀 번거롭다. 사전에 교육부나 교육청 등에 A라는 연수운영 계획서 등을 '심의'해 주라고 제출한 다음 교육부나 교육청이 '승인'을 해 주어야 연수생을 모아 NEIS에 등록가능한 연수를 진행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연수가 끝난 뒤 바로 그렇게 자격을 획득한 개인이나 기관에서 결과를 종합해서 '보고'하면 비로소 NEIS 연수 탭에 '인정되는 연수시간'이 등록된다.

 

 

이렇게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연수는 사전준비 과정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어느샌가 '교원 연수'라는 하나의 시장이 생겨나 버렸다. 연수 기획 및 진행만 전문적으로 하는 사설 연수업체들이 꽤나 많이 출현한 것이다. 상품성이 있는 강사를 발굴하여 연수를 개설하고, 적정 연수비를 책정한 뒤에 연수생을 모집하여 연수를 진행하는 온전한 시스템이 갖추어졌다. 연수전문업체들 사이에는 치열한 경쟁도 있고, 잘 나가는 업체-다소 뒤쳐지는 업체도 있는 여엿한 생태계가 구축되었으며 지금 현재도 잘 유지해 나가는 중이다.

 

검색엔진에 '교사 원격연수'라고만 치면 수많은 업체들이 죽 나오는데 그 수는 페이지가 휠쩍 넘어갈 정도로 많다.

 

 

 

 

2. 시대는 빠르게 변해간다.

약 5년전까지만 해도 이러저러한 신청과정을 통과하여 자격을 갖춘 연수전문 사설업체들에게 교사들의 연수는 집중되어 있었다. 의무적으로 일년동안 90시간 ~ 120시간 정도의 연수를 들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어차피 채워야만 되는 연수시간을 수많은 '연수전문 사설업체' 사이트들에서 비교적 간편한 온라인 수강만으로 전부 채워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출처 : 한국교육신문

 

그런데 시대가 달라졌다. 학교는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뉴스에서 각종 사회문제가 터져나올 때마다 그 문제들에 대한 최종적으면서도 필수적인 해결책이라도 되는 양 학교에 '의무연수'라는 이름의 '만병통치약'을 마구 처방해 밀어넣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수 타이틀도 노골적으로 "의무연수"라고 붙여서 하달된다. 

 

예를 들어 부모의 아동학대로 아이가 사망한 사건이 불거지면 교직원들에게 "아동학대 신고의무자 교육 몇시간"이 의무연수로 배정된다. 또 성에 따른 차별에 관한 이슈가 중요하게 부각되기 시작하면 "양성평등에 관한 교육 몇시간"이 교원들에게 의무연수로 던져진다.

 

끝이 아니다. 성희롱, 성매매, 성폭력, 가정폭력예방, 학교폭력예방, 인권, 노동, 통일, 인성, 적극행정, 청렴, 장애인식개선, 교육활동 침해행위예방, 생명존중, 심폐소생술 및 응급처치, 긴급복지 신고의무자 교육 등등. 이와 같은 추세라면 의무연수는 앞으로도 쭉쭉 늘어나게 될 전망이다.

 

 

'의무연수'는 강제로 이수해야만 한다. 의무연수의 종류와 시간이 많아지면서 교사들이 일년동안 필수로 채워넣어야 하는 연수이수시간 90시간 ~ 120시간이 자동으로 상당부분 채워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의무연수'들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두 '무료'로 제공된다. 의무연수를 사설업체가 아닌 각 시도교육청에 소속된 연수원이 직접 진행하기 때문이다. 연수이수에 따른 비용이 전혀 들지 않은채로 필수연수이수시간 기준을 거의 다 충족시키고 나니 왠걸, 보이지 않던 문제가 갑자기 수면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바로 '교원 자율연수비 지원 사업'의 예산이다. 필수로 도달해야 하는 연수이수 시간기준을 채우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사설업체의 유료연수를 이수할 때는 지원되는 자율연수비를 사업계획에 따라 모두 사용할 수 있었는데 반해, 무료 연수만으로도 필수 연수이수기준이 충족되어 버리게 되었더니 지원되는 자율연수비를 사용할 곳이 느닷없이 사라진 것이다.

 

오해를 줄이기 위해 급히 하나만 첨언하자면 교원연수 사설업체의 연수를 울며 겨자먹기로 듣게 되는 것은 딱히 사설업체의 연수가 질이 떨어진다거나 교사들이 나태하여 연수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다. 연수의 업데이트 속도보다 연수생들의 연수이수 속도가 훨씬 빠르기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일년에 120시간 정도씩, 한 4~5년만 사설업체 연수를 지속적으로 이수하고 나면 비슷한 주제안에서 비슷한 컨텐츠를 조그만 변화만을 가미해 살짝 변형한 연수들밖에 남지 않게 되어 아직 듣지 못한 새로운 연수를 발견하더라도 흔쾌히 이수하고자하는 마음이 샘솟지 않게 되는 것이다. 

 

 

3. 남는 예산이 향하게 되는 곳은 어디일까?

공기관에서 연초에 계획을 세워 확보해 두었던 '예산'은 왠만하면 계획대로 다 사용되어야 한다. 예산이 남거나 모자르면 '추경'을 통해서 남는 것은 반납하고, 더 필요한 것은 추가로 교부받는 절차를 진행하면 되지만 그럴 경우 연초에는 예상할 수 없었던 부득이한 사유를 제시해야만 한다. 이 때 만약 부득이한 사유가 아니라 예산신청 단계에서 연초의 계획을 성실하게 세우지 못한 것이라거나 사업주체들이 사업을 불성실하게 운영한 것이 원인이라면 여러 사람들이 다소 곤란한 일을 겪게 될 가능성이 있고, 그러지 않더라도 최소한 다음년도에는 같은 사업에 대한 예산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게 될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한편, 하나의 기관에 배정되는 예산은 화수분이 아니다. 총액이 정해져 있어서 경중을 따져 각각의 사업에 적절히 분배하여야만 한다. 최종 의결은 별도의 기구에서 진행되긴 하지만 일단 최초의 예산안은 기관장이 구성원과의 협의를 거쳐 결정하는데, 어떤 사업에 얼마만큼의 예산이 주어질 것이냐는 그래서 같은 기관이라도 그 비중에 차이가 생기게 된다.

 

 

2년쯤 전에 어떤 초등학교의 '최초의 예산안'을 수립하는 회의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듣게 되었다. 업무 담당자들이 제출한 1년동안 추진할 사업 계획서와 예산신청서 자료들을 살피며 학교 예산안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행정실장'이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교원 자율연수비 지원 사업 예산을 절반 정도로 삭감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지금까지 몇년 지켜보니 매년 거의 절반 가까이 예산이 사용되지 않고 남던데, 애초에 예산을 조금만 할당하고 그만큼은 다른 사업에 추가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교원 자율연수비로 책정해 놓은 1인당 25만원을 15만원이나 10만원 정도로 줄이자는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4. 고작 1년에 25만원밖에 안되는 교원 자율연수비가 어째서 남는걸까?

앞서서 교사들이 연수 의무이수시간을 충족시키기 위해 지금껏 사설연수업체의 연수들을 울며 겨자먹기로 듣고 있다고 했기 때문에 연수 의무이수시간만 도달하고 나면 그것 외의 자기연찬을 위한 노력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예상들과는 정반대이다.

 

교사들은 자기연찬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교사로서의 자기 성장과 교사 본연의 과제인 학생의 성장을 구분하지 못하여, 자기 성장이 곧 학생의 성장이라고 굳게 믿고 학생의 성장에는 눈을 감은채 자기연찬에만 모든 정력을 집중하는 교사들도 부지기수이다. 

 

역시 뭐든지 적당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쨋든 교사들의 수만큼 교사들이 추구하는 배움도 엄청 다양하다. 전국의 교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가장 좋은 방식으로 성장하고자 하고 있으며, 그것들을 내면화하여 아이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이러한 활동들은 '직무연수라는 자격'이 부여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즉, 교원 자율연수비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수많은 무료 '강제연수'를 통해 연수 의무이수시간을 충족시키고 나니, 유료인 '사설연수업체의 연수'를 울며 겨자먹기로 들어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교사들은 좀 더 자기 연구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사이에서 교원 자율연수비가 붕 뜨게 되어 버렸다. 억지로 25만원을 전부 사용해 주기 위해 굳이 '사설연수업체의 연수'를 찾아가서 그나마 구미가 당기는 연수를 찾아듣는 '책임감(?)'을 발휘하는 교사들도 없진 않지만, 교원 자율연수비 지원 사업비 25만원을 그냥 반납해 버리고 마는 교사도 점점 늘어나는 중이다.

 

 

사설연수업체에 개설되어 있는 연수는 최소 4만원에서 최대 15만원이나 20만원까지 나가기 때문에 연수를 한개나 두개 정도만 들어도 교원 자율연수비 25만원은 모두 사용가능하지만, 15시간에서 최대 60시간의 투자도 함께 필요하기 때문에 기회비용을 계산하여 교원 자율연수비 지원 25만원을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5. 잘못된 관행과 그에 대한 황당한 답변을 따져볼 주체가 없다.

나도 교사로서 성장하기 위해 수많은 연수를 듣는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것들은 교원 자율연수비 지급 대상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기에, 즉 교육청 심의를 통과하여 '직무연수'로 등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NEIS에는 등록되지 않으며, 별다른 연수비 지원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그렇듯 나역시 뭔가를 바라고 '개인 연구'를 비롯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물론 학생들의 성장을 제대로 지원하려는 것이 바라는 것이라면 바라는 것이지만) 지금껏 자율연수비 지급이 되건 말건 관심을 크게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내가 성장하고 그로인해 수업의 질이 올라가면 그뿐이었다.

 

 

그런데!!!

 

최근 평생교육기관 중 하나에서 개설된 연수를 신청하여 공부를 하던 중 학교마다 '교원 자율연수비 지급'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학교는 교육부나 교육청 승인을 득한 '직무연수' 뿐만이 아니라 '평생교육기관에서 진행하는 연수'도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교육청 별로도 '교원 자율연수비 지급 대상'에 대한 기준에 대한 해석이 상이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ms08070/222250965541

 

나는 지금껏 교육부 및 교육청에서 승인한 직무연수를 대상으로만 '자율연수비 지원'을 받아왔었는데, 대학원 등록금을 비롯하여 교사들이 수강가능한 학원교육과 심지어 연수 교재비까지 지원해 준다고 기준을 마련한 충북교육청이 있으며, 내가 소속된 지역 내에서도 일부 학교는 '충북교육청' 정도의 기준을 마련하여 '자율연수비'를 지급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충북교육청과 내가 소속된 지역 내의 일부 학교의 '유권 해석'에 대한 부러움과 왠지 '지금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뭔가 변화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동시에 나에게 찾아왔다. 그리고 업무담당자부터 차례로 찾아가게 되었다...

 

 

업무담당자는 말 그대로 업무를 추진하기만 할 뿐 소위 '유권 해석'을 할 주체는 아니므로 결국 '교감'의 직책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께 갈 운명이었다. 교감선생님과 '교원 자율연수비 지급'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첫번재로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다. 

 

오로지 교육부나 교육청의 승인을 얻은 '직무연수'만이 '교원 자율연수비 지급'대상이라는 유권 해석을 내린 교감선생님께 내가 계속 따지고 들어가던 중 충격적인 사건은 발생하였다. 

 

"(교감)모든 연수에 대해서 자율연수비 지급을 하면 아무래도 안 되지 않을까요"
"(나)도대체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죠?"
"(교감)안 그래도 아이스크림이나 티처빌(사설연수업체들)같은 곳에서 하는 연수에 대해 많은 선생님들이 말하길 별로 효과도 없고, 교사 전문성 향상에 도움도 그다지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인데, 만약 모든 연수에 대해서 자율연수비 지급을 해주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무도 아이스크림이나 티처빌 연수를 듣지 않을 거잖아요. 그렇게 되면 안되잖아요?"

"(나)예?????? 그러면 정말로 더더욱 교육청에 등록된 직무연수가 아니라 더 많은 연수들을 지원 대상으로 열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원 자율연수비 지급은 모두에 인용하였듯 교원 전문성 향상에 따른 공교육 내실화를 기대하며, 교과교육, 생활지도 및 상담 등의 역량 강화를 위한 자율연수비에 사용할 수 있게 지원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교원 자율연수비는 사설연수업체 등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학교과 교사들을 동원하는 사업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교사의 역량과 전문성을 강화하는데 연수비를 지원하는 사업인데... 아무도 '사설업체의 연수'를 들으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연수비 지원 대상을 확대할 수 없다니!!! 이건 해도해도 너무 심한 답변이다.

 

그리고 교감선생님의 대답은 이어진다.

 

"(교감)만약에 어떤 선생님이 탁구장에 가서 레슨을 받고 와서는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한 거였다라고 설명하며 레슨비를 지원해 달라고 할 때 그런 걸 또 모두 지원해 주면 안되는 거잖아요?"

 

 

얄굿게도 하필이면 탁구를 예로 들고 있다. 얼핏들으면 저 말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저 대답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율배반이다.

 

학교에는 '동아리'라는 것이 있다. 학생들의 다양한 흥미와 요구를 바탕으로 학생들의 소질을 계발하고 창의적인 사고능력을 신장하기 위해 교과 외 활동을 하는 것이 바로 동아리이다. 교육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가 한참 뒤떨어진 영역 중 하나가 바로 이 동아리 활동일 것이다.

 

학교가 주된 배경을 이루는 외국 영화를 보면 사건들이 상당부분 학생들의 동아리 활동 안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천문, 수영, 축구, 밴드 등을 비롯하여 만화, 오퀄트, 다도 등등 참 다양한 동아리 활동이 방과후에 학생 주도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학교 영화는 어떤가? 학교하면 수업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과후에 다양한 학생 동아리 활동이 이루어지는 스토리텔링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건 현실고증을 제대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말로 학생동아리 활동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초등학교의 동아리 활동은 더욱 심각하다. 학생의 희망을 우선적으로 반영하여 학생 스스로가 동아리를 운영하는 것이 동아리 활동의 본질이라고 했을 때 초등학교의 동아리 활동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발달단계를 고려하다 보니 아직까지 학생들에게 동아리 개설과 운영을 맡기지 못하고 학교가, 즉 교사들이 동아리를 개설하면 학생들이 그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나마도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기 위해서 학년군 등으로 동아리를 통합해서 운영한다고 하면 그것만으로도 흔치 않은 일이다. 많은 경우 그냥 담임교사가 '올해의 동아리는 이것이다.'라고 선언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불만은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단골 민원 중 하나가 바로 "동아리를 선정하고 운영할 때 학생의 흥미와 특기, 적성 등이 반영될 수 있도록 다양한 동아리를 개설하라"는 요구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민원이 거세질 때면 교장과 교감은 은근슬쩍 그 비난의 화살을 교사들의 안일함으로 돌리곤 한다. 너무 교사만 편하게 하려고 하지말고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구상해서 실행해 보라고 말이다. 

 

만약 어떤 교사가 학생들의 다양한 흥미와 소질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탁구부'를 운영하려는 구상을 했다고 해보자. 교사가 되기 전에 교사가 세상 모든 경험을 제대로 갖추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탁구에 대한 경험을 이미 갖추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탁구 동아리 운영을 위해서는 방학 때나 아니면 퇴근 후의 시간을 투자하여 본인이 먼저 탁구 레슨도 받고, 탁구장 관장님과의 상담활동 등을 통해 탁구부 운영에 대한 노하우도 전수 받아야만 한다. 

 

이와 같다 했을 때 '탁구장에서 레슨받기'를 과연 '교사 전문성 향상'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더욱 장려하고, 여력이 된다면 레슨비 중 일부는 지원해 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다양한 동아리를 개설하지 않는 것을 두고 교사들이 나태하다며 학부모 편에 서서 함께 교사들을 비난하면서도 '탁구장에서 레슨받기'는 교육활동과 마치 전혀 상관없을 수 밖에 없지 않느냐면서 '교원 자율연수비 지급대상'을 확대하면 안되는 근거로 갖고 오는 것은 이율배반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 하다보니... 마지막은 교육청 담당 장학사에게 문의해 볼 것이라고 결론 지어졌다. 어차피 최종 권한이 교감선생님도 없었기에 끝까지 항의할 주체가 될 수 없었다. 

 

 

이제 Next level 이다.

그렇게 교육청 "교원 자율연수비 지원 사업 담당 장학사"와 연결되었다.

"(장학사)교육부 및 교육청이 승인이 된 직무연수만이 자율연수비를 지원해 줄 수 있는 대상이고 나머지는 아닙니다."
"(나)교육청 중에서는 다르게 유권 해석을 하는 곳도 있으며, 우리 지역 내 학교 중에서도 다르게 유권 해석을 하는 곳이 있습니다. 지원 대상에 대한 해석을 달리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장학사)전국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유권 해석을 하는 교육청은 충북교육청 한 곳 뿐이라서 그것을 일반화하기에는 아직 좀 더 검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지역 내 학교 중에서 만약 다르게 기준을 적용하는 곳이 있다면 그 학교가 잘못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살짝 긴장하였다. 어떤 학교들이 교육청의 지침과 다르게 기준을 적용하여 운영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분명 교육청의 유권 해석과 다르게 기준을 적용하는 곳이 우리 지역에 몇 개 있음을 밝혔기 때문에 나는 교육청 장학사가 자기 업무에 대한 사명감을 발휘하여 도대체 어떤 학교가 규정을 어기면서 사업을 추진하는지 물어올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장학사는 자율연수비 지원 대상에 대한 기준이 확고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내가 사례로 이야기 해준 학교는 감사의 대상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전혀 궁금해 하지 않았다. 각급 학교마다 학교재량에 으해 좀 더 자율연수비 지원 대상기준의 폭을 넓힐 수도 있지 않느냐는 나의 물음에 그럴 수 없다라고 못을 박았으면서도 '규정위반'하는 학교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그 확고하다는 기준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거나, 아니면 규정을 위반하여도 별다른 상관이 없다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혼란마저 생겼다.

 

그러면서 장학사는 두번째 충격적인 발언을 하며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장학사)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승인을 거치지 않는 연수를 지원해 줄수는 없잖아요."

 

도대체 그 승인이라는게 얼마나 권위가 있길래 승인을 거치지 않은 연수는 신뢰할 수 없다는 말일까? 장학사가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바로 그 '승인'을 받았다는 연수들 중에는 예를 들어 이런 것이 있다.

주식에 대한 기초 지식을 알려주는 연수말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선진국 교육에 비해 허약한 것들 중 하나가 바로 경제이기 때문에, 주식에 대한 소양을 교사가 기르는 것을 교사 전문성 향상을 위한 활동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과연 그 대단한 '승인'을 해 주어야 할 만큼 '주식 연수'가 초등교사의 직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걸까?

 

평생교육기관에서 진행하는 "한글지도 연수"보다 단지 '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주식 연수'와 달리 교사 전문성 향상을 위한 활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것일까? 그 외에도 정말로 '교사 전문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 의심이 되지만, 그 잘난 '승인'을 받았다는 것만으로 당당히 '직무연수'가 되어 있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상황이 이런데 도대체 장학사가 말하는 '승인'은 무엇을 위한 승인이란 말인가?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다보니 결국 교감선생님과 같은 문제로 돌아왔다. 교원 자율연수비 지원사업 업무담당 장학사도 나의 건의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끝까지 항의할 주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목소리를 높혀봐야 그냥 그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장학사에게 나의 의견을 민원으로 제기하려면 어떤 창구를 이용할 수 있냐고 물었다....

 

장학사는 솔직히 그런 창구는 없다고 말해주었다. 교원단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의견을 전달할 수는 있겠지만, 그나저도 그냥 의견 '전달'일 뿐이기에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거라고 한다.

 

도대체 누구와 대화해야 한단 말인가... 바로 교육감? 아니면 교육부장관? 혹시 청와대 신문고? 

뭔가 건의사항을 내고 답변을 받고, 의견을 조정해 나가고 싶은데... 이번에 알게 된 것은 어디에도 개별 교사의 의견이 닿을 곳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6. 학급운영비가 개산급지급으로 바뀌었듯이 이제 교원 자율연수비도 바뀔 때가 되었다.

담임교사에게는 매년 학급운영비라는 것이 배정된다. 학급 운영에 필요한 경비에 사용할 수 있게 20만원 정도가 책정되어 있는데, 학생상담이나 다양한 학급행사, 학급문집이나 학급앨범 제작 등에만 사용해야 하는 목적성 사업비이다.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학급운영비는 교사가 학급운영비를 사용할 일이 있을 때 미리 결재를 올리고 교감, 교장의 승인을 받은 다음 행정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사용하는 시스템이었다. 

 

학급 행사라는 것이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학급운영비 사용은 절차를 거치면서 때를 놓치게 되기 때문에 제때 활용되지 못하고 연말에 피자 같은 간식을 사거나 한 두가지 소모품 구입으로 '땡처리'하는 경우가 잦곤 했다. 

 

 

'교원 자율 연수비 지원'과 비슷한 논리였을 것이다. 교사들에게 말 그대로의 자율로 맡겨 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을 것이다. 품의-승인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하거나 회계 관련 규정을 어길수도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학급운영비 집행은 학급운영비 도입 취지에 전혀 맞지 않아서 학급운영비를 그 목적에 맞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만든다. 교사들이 수업과 학생 생활지도 등 교육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학급운영비 집행 간소화의 필요성이 점점 커져만 갔다.

 

아직도 많은 지역의 교육청에서는 개산급은 지출의 특례로 최소한으로 운영해야 되기 때문에 학급운영비를 개산급으로 지급하여 담임교사에게 미리 20만원 전체를 지급하고, 연말로 소급하여 정산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있는 지역 교육청에서는 학생자치활동비 성격으로 소액인만큼 학급운영비를 개산급으로 지급하여 학급운영비가 필요한 순간에 즉시 대응할 수 있게 하고, 정산은 회계연도 말에 한꺼번에 진행하고 있으며 몇년째 별탈없이 시스템이 지속되는 중이다.

 

내가 속한 교육청은 학급운영비에 관해서는 꽤나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 그러한 선진적인 관점을 '교원 자율연수비 지원'으로까지 확대하였으면 좋겠다. 사설연수업체로 예산의 상당부분을 몰아주는 구조인 지금과 같은 형태의 자율연수비 지원으로 원래의 사업 목적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게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학급운영비처럼 '자율연수비를 개산급 형태'로 미리 지원하고, 연말에 좀 더 유연하게 확대된 지원 대상 기준을 적용하여 정산하는 방식이 좋겠다. 그럴 때만이 진실로 교원 전문성 향상에 따른 공교육 내실화와 교과교육, 생활지도 및 상담 등의 역량 강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