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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X2]선(S)생님의 시(S)선

[SX2]학교생활기록부 작성 시즌이 돌아왔다:. 학기말 나이스 작업과 성적처리에 도움을 주는 행동발달 및 종합의견 입력기 같은 프로그램의 사용을

by Teachography 2021.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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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계에도 슈퍼스타가 있다. 여기서 내가 개인적으로 슈퍼스타라고 부르는 것은 ‘인지도’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선생님들을 그냥 내 마음대로 교직계의 슈퍼스타라고 부르고 있다. 어쨌든 내가 있는 지역에는 전국구 슈퍼스타가 3분 정도 계신다.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구축하고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뿜 하고 계신다.

우리 지역 슈퍼스타 3분과는 페북 친구도 부지런히 미리미리 신청해서 맺어 놓았다. 마침 이분들은 SNS도 활발하게 하고 계시기 때문에 포스팅 하시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최신 유행에 닿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지금 학교의 시간은 바야흐로 7월 말을 향해 가고 있다. 학기말의 학교는 유난히 정신없이 흘러간다. 소위 '진도'라고 부르는 교육과정 계획이 거의 달성될 시기라서 선생님들이 한가할거라고 추측할지도 모르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왜냐하면 생활기록부의 마감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1학기동안의 교육과정 운영 결과를 종합해서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 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

학기말 생활기록부 나이스 입력 시즌을 맞이하여 하나의 페북글을 보게 되었다. 우리 지역 슈퍼스타 중 한 분이 '생활기록부 시즌'을 대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에 관한 짧은 포스팅을 업도드 한 것이다.



먼저 나이스란 예전에 수기로 쓰고 보관했던 학교생활기록부라는 것을 전산으로 옮겨 놓은 시스템을 부르는 말이다. 나이스에 대해서는 다양한 비판이 있었고 지금도 그 비판은 유효하지만 주로 교사들의 비판이기에 언제나 그래왔듯 무시되고 지나갈 뿐, 교육청 관료들과 교육계 밖의 인사들이 여러 논리를 만들어 착착 진행 해 온 나이스는 이제 학교 행정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 학교생활기록부도 이런 흐름 속에서 나이스 안으로 들어와 완전히 전산화되어 관리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학생이 전학을 가면 전산으로 E-mail 보내듯 다음 학교로 학생의 생활기록부와 작성 권한을 넘길 수 있고, 졸업생이 자신의 자료를 찾고 싶으면 '나이스 검색'을 통해 빠르고 쉽게 발급받을 수 있기에 편리한 것도 사실이다.

출처 : https://www.busan.go.kr/news/snsbusan04/view?dataNo=41939


나이스에 입력해야 되는 학생생활기록부는 그 때 그 때 작성하는 부분(출결, 시간표, 창체 등)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교과학습평가 부분과 행동발달 및 종합의견 부분 등은 체크리스트를 이용해 수기로 기록해 두었다가 학기말이 되면 본격적으로 한꺼번에 시스템에 넣는 것이 일반적(당연히 case by case지만)이다. 선생님들이 이렇게 전산화된 생활기록부를 어떻게 작성하고 있는지 그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학부모들과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생활기록부 작성은 교사들의 고유한 업무이기에 결과만 공개될 뿐 과정은 대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런데 이번에 슈퍼스타 선생님 한분(이하 슈퍼스타A라 하겠습니다.)이 베일에 가려져 있던 생활기록부 작성 과정의 일부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개하고 말았다. 슈퍼스타A가 이번에 올린 '행발입력기 유감 포스팅'은 교사들 사이에서만 주로 읽히고 별다른 파장없이 넘어갔지만 만약 스승의 날 쯤 일년마다 정기적으로 우리나라를 휩쓰는 '교사까기 전국대회'에 노출되어 만천하에 유포되었다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우리 사회에 상당한 충격을 안겨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새롭게 교사들을 까대는 좋은 아이템으로 두고두고 사용될 것이고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는 학교생활기록부이니까 담임 선생님들이 아이들 한명한명을 개별적으로 관찰하여 그 특성에 맞게 당연히 직접 일일이 기록하는 줄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퍼스타A가 소위 폭로의 형식으로 까발려 버렸듯 일부 선생님들이 '행발입력기'라는 것을 통해 여러 예문에서 학생에게 어울리는 문장을 몇 개 골라 프로그램으로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고 있으며, 많은 선생님들이 이 프로그램의 존재에 열광하고 찬사를 보낸다는 사실은 교사들을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인 집단으로 몰아가기 딱 좋은 먹잇감의 다름 아니다.


뜨끔할 수밖에 없는 슈퍼스타A의 유감표명에 대하여 과연 다른 선생님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놀랍게도 유구무언 할 수밖에 없는 주제였던 것인지 별다른 댓글은 없었다. 그나마 달린 댓글에서는 일단 댓글을 다는 본인은 예문을 골라서 생활기록부를 조합-완성하는 프로그램을 쓰지 않고 일일이 학생특성에 따라 입력하고 있으니 슈퍼스타A의 비난을 받지 않아도 되지만, 선생님들이 '생활기록부 문구조합 프로그램'을 그대로 갖다 쓰는 것이 아니라 참고자료로만 사용할터이니 너무 과도한 비난인 것 같다는 다소 소극적이고 어떠면 구차하게 보일 수 있는 반응들 뿐이었다. 한마디로 슈퍼스타A의 문제의식에는 동의하나 과도한 걱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쉽게 예상할 수 있듯 굳이 이 주제를 끌고 와서 시간을 들여 무려 블로그 글을 작성하고 있는 나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슈퍼스타A의 문제의식에 깊은 유감을 표현하고 싶다. 슈퍼스타A의 페북 글은 내부 사정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에게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문제적 글이고, 문제의 본질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려서 진짜 문제가 있는 곳을 보지 못하게 방해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그저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높이기 위해서 동료교사들을 깍아내리려는 단순 헤프닝("나는 학생마다 생활기록부 내용을 일일이 기록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


나는 일명 "행발입력기"를 널리널리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1. A와 B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으면 A와 B는 같은 것으로 간주할 수 밖에 없다.


어느 날 과학 팟캐스트에서 '이해한다.'라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리학자, 과학기자 등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게 되었다. 핵심 내용은 완전한 암기와 이해는 구별이 불가능하다라는 것이었다. 구별이 불가능할 때는 두 개가 같다고 간주해도 문제가 없으니 이해가 어려우면 일단 완전히 암기해버리라는 약간은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다. 우스갯거리로 말한 것이기도 해서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나는 이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A와 B를 구별할 수 없으면 같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슈퍼스타A는 생활기록부란 특히 행동발달 및 종합의견은 모름지기 담임교사가 아이들 한명한명의 개별적 특성에 맞게 직접 작성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가지 예문 중 학생에게 어울릴 것 같은 것들을 골라 자동 완성으로 간편하게 처리하는 것은 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왠지 그럴싸해 보인다. 슈퍼스타A의 말은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절대선'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과연 그럴까?


나는 조금 섣불리 단언해 보고자 한다. 슈퍼스타A가 직접 쓴 '생활기록부'와 일명 '유감스런 교사'가 프로그램을 돌려서 쓴 생활기록부는 구분할 수가 없다. 아니 오히려 프로그램을 돌린 생활기록부가 더 세련되고 학생의 특성을 잘 반영했다고 학부모와 학생이 느낄 가능성도 상당하다. 내가 경솔하게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학교생활기록부는 교사가 쓰고 싶은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부 및 교육청은 생활기록부가 '공문서'이기에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면서 학교로 '생활기록부에 관한 규정, 작성요령'을 매년 보내고 있으며, 선생님들에게 '생활기록부 작성에 관한 연수'를 매년 실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다. 교사가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는 별로 없다. 소위 '생활기록부 작성 요령'을 철저히 지키며 생활기록부를 쓰게 되면(쓸 수 밖에 없고, 꼭 규정에 따라 써야만 한다.) 결국 결과물은 구분 불가능한 같은 수준과 내용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2021 생기부 기재요령, 이렇게 바뀐다! - 에듀진 인터넷 교육신문

2021학년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이 발표됐다. \'2021 학생부 기재요령\'은 1월 14일 발표된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 개정 등과 병행해 2020 개선사항이 유지된다. 그 가운데 원격수업

www.edujin.co.kr


학교생활기록부는 중요하기에 '규정'이 있는 공문서로 관리되는 것은 당연하며, 가이이드 라인 안에서 교사가 정성을 다해 학생 개별 특성을 반영해 직접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 '작성요령'이라는 것이 정말 제대로 된 것이라면 말이다. 교육부에서 만든 '생활기록부 규정'은 아주 철저하다. 대표적으로 하나만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날짜를 표시할 때는 '~'를 사용하는 것은 규정 위반이고, '-'를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만약 '~'를 사용해서 날짜를 표시했다면 바로 규정 위반이니 고치라는 수정지시가 내려온다. 놀랍지 않은가? 더욱 놀라운 사실은 누군가 '-'를 사용해서 날짜를 표시하는 것만 허용되는 것에 대한 민원을 넣었더니 '~'를 사용하는 것도 허용한다는 규정이 최근 추가되었다는 사실이다. 아직 안 끝났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이 또 있다. '~'를 사용해서 날짜를 표시해도 된다는 규정이 신설되었는데도 여전히 옛날 규정에 갇혀 '~'는 규정위반이라고 선생님들에게 안내하는 학교가 존재한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출처 : https://chamssaem.com/491


'학교생활기록부' 규정이라는 것은 이 정도로 강력하다. 이렇게 세부적이고 강력한 규정들을 모두 지키며 작성한 생활기록부이기에 교사가 직접 작성을 하든, 프로그램을 돌려서 작성을 하든 구별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교사가 직접 작성을 하게 되면 규정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고, 학생의 개별 특성에만 오롯이 집중해야 될 때 규정을 지키는 것에 한눈을 팔다보니 프로그램을 돌려 작성한 생활기록부보다 질적으로 수준낮은 것이 될 가능성도 있다. 프로그램을 돌려 작성한다고 하니까 버튼만 몇 개 간편하게 누르면 짠하고 완성되는 듯한 뉘양스를 풍기는데 최소 6~7개에서 많게는 몇 십개의 규정에 충실한 예문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학생에 어울리는 것을 끌어오는 것이라 더더욱 교사가 자기 깜냥으로만 작성한 생활기록부보다 더 근사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위와 같은 세부적인 규정이 있기에 한가지 재미있는(?) 시스템이 행해진다. 바로 '생활기록부 점검'이다. 공문서에 필수적인 '결재'를 말하는게 아니다. 말 그대로 '점검'이다. 무엇을 점검하냐하면 바로 '학교생활기록부 규정'을 잘 지켰나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의 생활기록부를 돌려보면서 '확인'하는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를 받는 생활기록부를 결제자도 아닌 여러 선생님들이 돌려본다는 사실이 좀 꺼림칙할 수도 있고, 법적인 문제로 커지면 큰일이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전혀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 주고 싶다. 왜냐하면 규정을 완벽하게 지킨 학교생활기록부는 아무런 개성이 없이 다 비슷비슷해서 무슨 민감한 개인정보 따위가 자리잡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어떻게 '생활기록부 입력기'같은 프로그램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소설이나 에세이, 일기같은 장르를 예문을 골라서 완성하는 프로그램으로 작성하는게 가당키나 한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블로그 글을 예문을 골라 완성하는 프로그램으로 작성 가능한가? '생활기록부 입력 프로그램'의 존재 자체가 학교생활기록부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생활기록부는 기록해야 하는 세부내용이 정해져 있고, 기록해야 하는 세부방법이 정해져 있다. 예문을 골라 작성하는 생활기록부 입력 프로그램은 마치 계산기 정도의 위치라고 표현하면 딱 적당하다. 수학적 사고력, 문제해결력 신장을 위한 수학문제가 아닌, 고득점이나 정밀한 결과만 중요한 수학문제가 있다고 했을 때 계산 속도와 정확도를 높히는데 도움을 주는 '전자계산기'가 바로 '생활기록부 입력기'와 같은 위치인 것이다. 여기에 무슨 교사들의 비도덕성, 비윤리성, 게으름 따위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질적으로 아무런 차이를 구별해 낼 수 없는 '선생님이 직접 쓰는 생활기록부'와 '프로그램을 돌려 작성하는 생활기록부'가 있을 때 교사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마치 변호사의 자문을 받는 것과 같으며, 계산기의 도움을 받는 것과 같은 '생활기록부 입력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아니 오히려 질적인 수준을 더 높힐 수 있는 '생활기록부 입력 프로그램' 사용은 이제 공식적으로 장려되고 보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학교생활기록부에 대한 교사의 전문적인 판단과 자율성, 그리고 권리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2. 스펙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나 제품의 능력을 기술할 때 쓰였던 용어이다.


작년 한 해 혜성처럼 등장하여 교육계에 회초리를 들어올리는 것으로 꽤 많은 인기를 끌었던 모 교수님은 강의에서 우리나라는 기계나 제품의 능력을 기술할 때나 쓰는 용어인 스펙을 인간에게 사용하는데 아무런 저항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인간을 물건 다루듯 하는 비뚫어진 인간관을 당장 인간중심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면서 말이다.

공문서이기에 각종 '규정과 작성요령'에 의해 관리되는 '학교생활기록부'는 굉장히 흥미로운 하나의 규정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문장의 마지막을 반드시 '명사형어미로 종결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즉, 문장을 마칠 때는 반드시 '-임', '-음','-함' 등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명사형 전성어미를 써서 글을 작성하는 경우는 언제일까?


'강원국의 글쓰기'라는 책에서는 명사형 표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장은 명사형, 형용사형, 부사형, 동사형이 있다. 명사형은 개념 중심의 관념적인 문장이다. 형용사형은 수식이 많고 감정적인 문장이다. 부사형은 느낌을 강요하는 문장이다. 동사형은 힘과 생동감이 느껴지는 살아 있는 문장이다. 그리고 명사형 표현은 ‘명사’라는 말 그대로 정지해 있다. 죽어 있는 표현이다. 반면 동사형 표현은 역동적이다. 살아있다. 살아 있어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명사형 문장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규정할 때다. 일종의 낙인 효과다.


학교생활기록부 작성요령은 '명사형어미로 종결'하라는 규정에 '강조'라는 용어까지 붙여놓았다. 실제로 생활기록부의 모든 문장은 명사형 어미로 종결되어야만 한다. 다른 방식의 종결어미는 규정위반이다. 나이스 도입 초창기에는 다양한 종결어미를 사용해도 괜찮았는데, 명사형으로 종결해야 한다는 규정이 점차 강조되어 이제는 철저하게 명사형으로만 종결할 수 있다.

명사형으로만 종결되는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을 우리는 어디서 많이 볼 수 있을까?
개념짓고, 규정하는데 특화된 명사형 문장은 어디에 적합한가?

나는 첫번째로 명사형으로 종결되는 문장의 집합을 '제품 사용설명서'에서 주로 만나게 된다.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주어서는 곤란한 전자제품의 스펙을 설명할 때 이런 방식이 쓰인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우리들의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한 후 그 결과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학교생활기록부'에서 만나게 된다.


학생중심, 아동중심, 인간중심으로의 변화가 '진보'라고 사회 곳곳에서 주장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학교생활기록부'는 그 반대방향으로 강화되고 있다. 무엇을 위한 객관인지 모르겠으나 기준을 정해놓고 정확하게 그 기준만을 지키라고 한다.

학교생활기록부는 이미 그 자체로 학생의 특성을 잘 반영해서 그 성장을 기록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오로지 객관성만을 강조하며, 죽어있는 표현으로 인간을... 학생을 죽어있는 존재로 다루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진단이나 비판없이 그저 당위적으로 '생활기록부는 교사가 직접 작성해야지'라고 유감표명을 하는 슈퍼스타A의 페북글은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잘못된 비난으로 인해 안 그래도 억울함이 많은 교직계에 나쁜 영향만 끼칠 뿐이다.

아무리 교사가 학생을 성장하는 존재로 여겨 사랑으로 관찰하고, 그 결과를 기록하고자 발버둥을 쳐도 온갖 규정에 꽁꽁 묶여 돌처럼 굳어있는 생활기록부를 생산해 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생활기록부가 가리키고 있는 곳은 명확하다. 인간의 대상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는 아이들의 특성에 맞게 생활기록부를 직접 쓰고 있으며 교사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데, '행발 입력기' 따위의 프로그램을 쓰는 유감스러운 교사들이 있어 씁쓸하다는 슈퍼스타A의 페북글에 불편함과 위화감을 넘어 일종의 깊은 유감까지 느낀 이유는 위에서 이야기한 두가지이다. 슈퍼스타 정도의 위치에 있으면(슈퍼스타A의 전문분야는 교육혁신이나 학생중심교육이 아니긴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고(물론 문제의 본질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긍정적인 변화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되는 것 아닐까? 잘못된 당위와 훈계로 교직계에서 자신의 위계만을 굳건히 하려는 것으로 오해를 충분히 불러일으킬 만한 글을 쓰는 것은 슈퍼스타의 본분을 망각한 행동이 아닐까?



나는 '문학의 힘'을 믿고 있다. 학교생활기록부의 모든 부분을 자유롭게 쓸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학생의 행동발달 및 종합의견 정도는 교사가 전문성을 가지고 자유롭게 쓰면 안될까? 명사형 어미로 종결하라. 미사여구는 사용하면 안 된다. '~'는 사용하면 안된다. 같이 세세한 규정으로 옳아매지 않고 말이다. 학교생활기록부가 죽어있는 문장이 아닌 살아있는 문장으로 이루어진 좋은 글로 채워질 수는 없을까?

'강원국의 글쓰기'라는 책에서는 좋은 글쓰기의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표현력이 좋은 사람은 서술어도 다양하게 쓴다. 평서형(공부한다)만 사용하지 않고 의문형(공부하니?), 감탄형(공부하는구나), 청유형(공부하자), 명령형(공부해라)을 쓴다. 평서형도 ‘~한다, ~이다, ~것이다’만 쓰지 않고, ‘~요, ~죠, ~아닐까’ 등으로 변화를 준다. 서술어가 변화무쌍해야 글이 지루하지 않다. 즉, 서술어가 변화무쌍해야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글의 한 요소가 된다. 명사형 문장을 동사형으로 바꾸면 생동감이 생긴다. 글맛을 살리는 부사를 잘 써라.


나는 사실 '생활기록부 작성 프로그램'의 사용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현재와 같은 우리 사회와 교육계의 생활기록부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없는 한 생활기록부 작성 프로그램을 사용하든, 교사가 직접 기록하든 아무런 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 방향으로 생활기록부 작성 규정이 강화된다면 교사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일종의 저항이나 시위의 의미로 그냥 '생활기록부 작성 프로그램'를 사용해 버리고 싶다.


나는 개인적으로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수업한 결과를 '에세이'처럼 쓰는 것을 지향한다. 내가 학부모로서 입장 바꿔보았을 때 '학교생활기록부', 소위 '통지표'를 보고 마음이 움직여 감동받는 글을 '생활기록부'라는 곳에 기록하여 전해주고 싶다. 지금까지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학교생활이야기'를 적어 보냈다. 그러자니 나이스에 기록하는 학교생활기록부 따로 학부모에게 진짜로 전하고 싶은 말 따로해서 학기말에 비슷한 일을 두번 반복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하는 회의감이 서서히 생긴다.


부디 '학교생활기록부'가 스펙의 기록이 아닌 학생을 온전히 바라바고 서술하는 기록으로 변화하길 바라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