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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X2]선(S)생님의 시(S)선

[SX2]새로운 전환점이 찾아왔다: 울고 싶은데 빰을 맞았더니...

by Teachography 2023. 3. 21.

1.회상

오늘은 어쩐지  2017년 어느 날의 내가 떠오르는 날이다. 그 날은 내가 나를 위해 준비해 놓았을 아른바 "카르마"가 나에게 다가왔던 날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것이 "카르마"라는걸 알지 못했다. 지나고 보니 그런 것 같다라는 것이다.
 
교육의 장에서 맞이한 몇번째였을 그 카르마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그 당시에 나는 어느 날 그 누구의 소개나 권유 혹은 아이디어 제공이나 단서의 발견 같은 것이 전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하나의 영감이 찾아오듯 발도르프 교육과 인지학을 번뜩이며 나의 머릿속에  떠올렸다. 발도르프 교육과 인지학이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것이다. 수많은 우연과 우연이 겹치다가 얽히고 설켜 올해까지 발도르프 교육을 횟수로 7년째 만나며 알아가고 있다.
 

7년 동안의 만남 속에 참 고마우신 분들이 많다... 그 은혜를 어떻게 보답할지를 모를 정도로...
 
 

2. 상황

나는 일단 하는 성향이다. 할 수 있는게 있다면 지금 당장 최선을 다해서 일단 해보자는 주의이다. 7년 전의 나는 발도르프 교육을 만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지학적 교육에 대하여 아는게 별로 없었다. 할 줄 아는 것과 경험한 것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것이 있으면 언젠가의 미래로 미루지 않고, 내 삶(내 교실, 내 수업, 우리 반 아이들)속에 바로바로 채워넣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어느새 횟수로 7년이다. 7년 전의 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발도르프 학교에서 많은 것을 경험했고, 그러다보니 할 줄 아는 것이 꽤 많아졌다. 물론 인지학의 정신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는 게 아니다. 어쩌면 단편적 지식의 파편들만 많아져서 추구해야 할 본질에는 한참 어긋나 버리게 된 걸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언제 본질을 인식하기나 했었던가? 단지 질적인 성장이 아니라 우선은 양적으로 발도르프 교육에 관해 풍부해졌다는 정도이다.
 
어쨋든 그러다보니 상당히 많은 것을 해왔다. 발도르프 교사 연수에서 나눠주시는 배움의 씨앗들에 나의 고민과 노력을 쏟아부어 싹을 틔우고, 줄기를 키워 나갔다. 줄기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 과정이 괴롭지는 않았다. 반대로 너무 행복했다. 다른 것을 다 떠나 나아갈 방향이 있다는게 너무 좋았다. 하지만, 행복과는 별개로 몸이 점점 지쳐가는 것도 사실이었다. 매일의 수업시간을 위한 시와 언어조형 어구를 찾거나 만들며, 일주일에 한번에서 두번 칠판 그림을 그려야하고,  한달에 한번씩 국가수준 교육과정을 인지학적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건 시간이 많이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동학년들과 교육과정 운영을 다르게 한다는 것에 대한 외로움 불안함이 가장 힘들었다.
 
그러다 울고 싶은데 빰을 맞는 일이... 예고도 없이... 아무런 징후도 없이...아... 전조 현상은 있었던가...

마치 인지학이 나에게 갑자기 찾아왔던 것처럼... 그렇게 갑자기... 또 다른 상황이 날 덮쳐왔다.
 
 

3. 사건

그날도 방과후에 칠판 그림을 고민하고 있었다. 하나의 소주제가 끝나고, 새로운 소주제로 나아가기 위한 칠판 그림을 그려야 했다. 어떤 그림이 수업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교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잠깐 이야기 할게 있으니 교실로 올라오겠다는 것이다. 

잠시 후 교감이 내 교실로 찾아왔다. 민원 전화가 있었다며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진짜 할 말을 전하기 위한 "자락 깔기"부터 출발하였다. 민원 전화를 넣은 학부모도 그렇고, 자신(교감)도 그렇고 평소 아이들을 사랑하고 창의성 있게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말을 전한다. 뜬금없는 지지와 응원에 속으로 무슨 민원이길래 서론이 이렇게 민망할까 라는 생각이 들 때쯤 교감은 민원의 내용을 알려주었다.
 

[민원 내용] 

(민원의 내용은 교감이 전한 내용이 그대로일 것이라는 걸 전제로 한다. 교감이 나를 배려한다고, 민원의 내용을 조절해서 전했을 가능성은 고려할 수 없고 그럴 가능성도 굉장히 적어 보인다.)
작년 4학년 우리반 아이 중 하나가 올해 5학년이 되어 "진단평가"를 보았는데, 국어 점수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고 한다. 학부모는 진단평가 국어의 점수가 낮은 원인으로 작년 담임인 나를 지목했다. 작년 담임이 교과서 진도를 제대로 나가지 않고, 다른 활동들로 수업들을 했기에 자기 아이의 국어 진단평가 점수가 낮은 거라고 전적으로 나에게 책임을 돌렸다. 평소 아이들을 사랑하고 창의성 있는 수업을 하는 모습에 좋은 마음을 갖고는 있지만, 작년처럼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수하지 않는 방식"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언제가는 자신과는 달리 나쁜 마음을 먹은 학부모가 문제 삼을 것이 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내 앞날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개선이 필요한 듯하여 민원을 넣는 거란다. 작년 담임인 내가 아이들과 열심히 잘 지내는 모습에 나를 좋게 생각하며 "알려주는 차원"에서의 "선의"라면서 말이다.
 

[교감]

올해 3월 새로 부임해 와서 아직 2주밖에 나를 보지 않은 교감은 민원 내용을 전하면서 학부모의 선의를 강조하며 나에게 조언... 비슷한 충고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창의성 있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잘 알고 있지만 교사에게 국가수준 교육과정 이수는 "법적인 의무"사항이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잠깐... 잠깐....잠깐만]

교감의 말을 다 듣지 못하고, 잠깐 이야기를 멈춰 세울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학부모와 두 사람 모두 하나의 전제를 기정사실로 정해 놓고 "선의의 민원"이든 "진심어린 충고"든 나에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담임교사인 내가 "우리반 학생들이 국가수준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수업을 진행하지 않았다"는 전제였다.
 
나는 우선 교과서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단호하게 "민원인과 교감"이 전제로 삼고 있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교육과정 이수를 제대로 할 수 있게 하지 않았다"가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교육과정 이수는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오히려... 교과서 진도만 그대로 나가는 것은 지금껏 공교육이 사교육에 비해 질이 낮다고 비판받는 핵심 근거 중 하나였다. 교과서 진도만 나가는 것을 두고 무능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교사 프레임을 씌우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국가수준 교육과정은 재구성을 권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나는 성취기준을 달성하는 걸 목표로 삼아 그 목표를 위해 교과서 진도가 아니라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서 1년동안 수업을 진행하였음을 이야기했다.
 

[증명이라는 협박]

교감은 나의 말을 듣고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음과 같은 말을 내밀었다.
 
"교과서 진도를 나가지 않고, 교육과정 성취기준 달성을 추구했다고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교과서 진도 말고 교육과정 성취기준 이수를 목표로 수업이 진행되었다는 걸 입증하는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고 교감은 물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만약!!! 학부모가 민원을 넣거나 고소를 하게 되면 교장이나 교감은 선생님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고, 교육청의 경우도 선생님의 잘못한 점을 잡아내고 법과 규정 위반을 저지르지 않았는지를 찾아내는데만 중점을 두고 감사 혹은 조사를 진행하면서 전혀 선생님 입장을 고려해 주지 않을거란다. 그 외롭고 험란하며 긴 과정을 나 혼자!!!!!! 견뎌내며 교과서 진도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교육과정 성취기준에 수업이 적합했는지 증명할 수 있겠느냐고 재차 물었다.

 
이쯤되면 협박으로 들린다. 아니 협박이 아니면 무엇일까...
 

[교감의 충고]

교감은 나를 위한 충고라며 "교과서 진도를 그대로 충실히 진행하는 수업"을 하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의 열정과 창의성이 이번 일로 꺾이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교과서 진도를 그대로 나가면서 뭔가 "교과서 진도와 상관없거나 다른 것"을 하려면 그건 교과서 내용에 양념으로 조금씩만 집어넣어서 수업하라고 말한다. "교*과*서*진*도* 를 그대로 나가고 그 외적인 것은 방법론적인 것만 활용하라"는 말을 교감이 된 선배교사에게 2023년 3월에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다. 10년 전으로 타임루프를 한 것처럼 느껴지며 지금 교감과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 현실감이 사라졌다.
 
교육감이 바뀌서 일까?
왜 시대가 급격하게 바뀌어 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걸까?
교감의 말이 우리나라 교육의 본모습일까?
 
나는 교감에게 "교감선생님..... 동쪽으로 가면서 동시에 서쪽으로 갈 순 없습니다." 라고만 말했다. 교육을 교육으로 보지 않고 행동주의에서 동물을 다루듯, 모든 걸 물질화 시키는 유물론적 사고에 경도된 충고라서 그냥 안타까움만 나타내고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부분의 합은 전체가 아니다.
산소 원자와 수소 원자를 그냥 모아 놓는다고 해서 물의 특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두가지 비유 모두 "전체는 전체로서 온전히 받아들일 때 그 가치가 드러난다"는 함의를 나타낸다. 교육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여기저기에서 좋다는 방법들을 짜깁기해서 가르쳐야 할 지식만 "사고"하게 한다고 그게 그대로 합쳐지는게 아니다. 뭔가 좋은 교육방법이 있다면 그것의 가치가 온전히 드러나도록 그 교육방법의 철학부터 내용, 방법 등까지 전체적으로 경험해야만 한다. 자기 멋대로 제단하고 조각내서 파편화된 것들을 짜깁기만 해서는 교육에 다가갈 수가 없다. 그건 교육을 왜곡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성장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쏟아낼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교감은 나와 대화를 하기 위해 온것이 아니라 "지시와 협박"을 하러 온 것이니까 말이다.
 

4. 신기한 일

이상한 일이 생겼다. 정말 신기한 일이 말이다. 또다른 카르마가 찾아오는 중인걸까?
 
사실 이번 사건은 굉장히 기분이 나빠야만 하는 일이다. 실제로 교감도 내 기분이 나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부단히 언어를 정선하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교육에 대해 무지한 학부모와 교감"이 성급하게 내가 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결론내리고 수업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라고 간섭하는 상황이기에 분명 이건 화가 날만 한 상황이었다. 
 

잠깐, 학부모와 교감을 모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자기 변명을 먼저 하고 가야겠다. 내가 학부모와 교감을 교육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은 30년 가까운 교육경력을 가진 교감을 무시하거나, 교육과 관련된 (어쩌면 나보다 더 큰) 사회적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는 학부모를 깔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교감은 학부모가 학교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아는 것 같았다라고 했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학부모와 교감이 교육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그들의 "오만" 때문이다. 오만함은 어디서 오는걸까? 잘 생각해 보면 "무지함"이 첫째가는 원인들 중 하나일 것이다. 사고를 통해 진리에 가까이 나아갈 수록 찾아오는 것은 "신중함과 겸손함"이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경험한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온 몸으로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하지만, 무지함은 필연적으로 오만함을 부른다. 내가 아는게 전부라고 성급하게 믿어버리고, 내 도량형에 맞춰 그 잣대로 세상 전부를 함부로 평가하게 되니까 말이다.
 
학교의 교실은 기본적으로 닫혀있다. 교사들이 갇힌 교실에서 밖으로 나와야만 한다는게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학교의 오래된 과제라는게 역으로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담임 교사가 어떤 수업을 하는지는 그래서 학부모와 교감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자기 아이를 통해서 수업의 단편을 들을 수는 있지만, 그 단편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아이의 내면에서 연결되었는지는 아이가 알려줄 수 없기에 온전한 교육과정을 알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인 "법적인 관점"에서의 교육과정 이수도 마찬가지이다. 1년 동안의 학급 교육과정 운영 결과는 닫혀있는 교실문 속에 놓인채 외부와는 단절되어 있다. 제 아무리 교감이라도, 1년 동안 아이를 통해 충실히 수업결과를 잘 전해들은 학부모라 하더라도 전체적인 모습을 알 수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학급 교육과정 운영 결과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을까?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 수업을 계획하고 진행한 담임교사에게 물어볼 수 밖에 없다.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은 담임교사에게 "1년 동안 수업을 어떻게 진행하였나요?" 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물론 담임교사가 교사 위주로 사실을 부풀리거나 왜곡할 수도 있지만, 담임교사의 설명을 먼저 듣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실의 단편들과 비교하여 수정 보안하면 될 일이다. 이 방법말고는 학급 교육과정 운영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아무리 못 미더뤄도 닫혀 있는 교실의 문은 담임교사가 열어줄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교감과 학부모는 지금까지 한번도 나에게 "1년 동안의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런건 애초에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학부모는 아이를 통해 드문드문 들었을 작년의 기억과 진단평가의 점수만으로, 교감은 3월에 새롭게 학교에 부임하여 아직 2주정도밖에 나를 보지 못했기에 전임 교감에게 들었을 몇마디(이마저도 하지 않았다면 더 심각한 것이고) 평가만으로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수시키지 않았다."라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나서 교사의 법적 의무 운운하며 교과서를 교과서 내용대로 그대로 진행하라고 "협박(법적 책임 운운했으니)" 했다. 오만해 보일 정도인 그 용기는 "무지함"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교육에 대해 과거에 어떤 업적을 쌓았든 현재는 무지함의 길에 들어선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돌아와서, 분명 화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인데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차분해 지는걸 넘어 기쁜 마음까지 들었다. 정말 신기하고 이상한 경험이었다. 더 정확히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4. 울고 싶은데 빰을 맞았더니

교감의 전화를 받기 전에 나는 조금 조급함을 느끼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데 아직 "칠판그림"을 시작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 쓸 그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늘 끝내야만 했다. 수업 준비과정의 루틴 상 칠판그림은 아이들에게 몇 일 후에 공개하더라도 오늘 완성해야만 했다. 몇가지 좋은 참고자료를 찾아놓긴 했는데, 영감을 불러오는 자료는 아직 찾지 못해 시간만 속절없이 흐르고 있어 조급함은 커질대로 커져 있었다. 
 
가끔 이렇게 조급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그냥 다 놓아버리자는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하지만, 뭔가를 하다가 다른 이유도 아닌 내 의지가 약해서 포기해 버리는 것은 내 자아에 큰 상처를 안겨줄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나의 이기심을 원동력 삼아 7년을 버텨온 것이다. 버텨왔다고 하니 뭔가 대단한 것을 하고 있었던 듯 자기기만을 하는 것 같지만, 어쩃든 핵심은 나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내 자아를 다치지 않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상황이 찾아왔다. 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모든 화살을 다른 쪽으로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팩트폭행이 원인이었다면 자아에 상처가 깊게 패였을텐데, 그게 아니라 "교육에 대해 무지한 교감과 학부모"가 협박으로 나를 몰아세워서 넘어트리려 하니 내 자아에는 상처 하나없이 몸이 편해질 수 있게 되었다. 
 
진짜로 울고 싶은데 빰을 맞아서 부끄러움 없이 실컷 소리내어 울게 된 상황의 다름 아니었다. 
 
나는 교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동안 교과서 진도와 다른 것을 하기 위한 "교육과정 재구성"을 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서 힘들었고, 요즘 들어 힘에 부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교감과 학부모 덕분에 조금은 쉬어갈 수 있게 된 것 같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절대 교과서 진도를 충실히 나가는 걸 폄훼하거나 지금 이 상황에 부하가 치밀어 비꼬는 말을 하는 게 아님을 강조하며 내 마음을 전했다.
 
교감도 더 이상 협박을 하거나 추가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 교감과 나의 대화는 종료되었다. 내가 감사하다고 하는데 교감도 더 할 말이 없었을 것이고, 나도 상황과 모순되는 내 감정을 돌아봐야 했다.
 

5. 새로운 전환점 : 카르마

마음을 진정하고, 오늘 상황을 돌아보았다. 오묘한 감정들을 가라앉히고 보니 뭔가 그동안 바빠서 지나쳤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업준비와 수업진행, 그리고 다음 수업의 준비와 이전 수업과의 연결, 수업결과물 정리 등에 노력을 쏟다보니 정작 가장 중요한 아이들의 변화모습과 더 다가갈 부분, 내면의 목소리 등은 의도적으로 눈을 감았던 것 같다. 교과서 진도가 아니라 교육과정 성취기준의 달성을 추구한다고 하면서 어쩌면 기존 교과서와는 다른 개념의 교과서대로 수업을 진행해 왔던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이제 내 자신을 한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면서도 아이들의 변화에 더 집중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카르마의 관점에서 보면 교과서 진도를 그대로 나가라는 교감과 학부모의 협박은 잠시 쉬어가도 좋으니 아이들에게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라는 이끔일 것이다. 마침 "아이 관찰"을 탐독 중인데... 이건 정말 우연일까? 아니면 운명일까?
 
무엇이 됐든 참 신기한 일이다.
 

6. 그 밖에

[전조 현상]

생각해보니 작년에 이상한 일이 있었다. 어쩌면 그게 오늘 일의 전조현상이었던 것 같다. 작년 2학기 말 쯤. 그러니까 11월 말에 갑자기 그때도 교감이 전화를 했다. 긴히 의논할게 있으니 "교장실"에 내려와서 교장과 교감, 그리고 나 이렇게 3사람이 이야기를 나누자는 전화였다.

바로 내려갔더니 교장이 이야기를 꺼낸다. 다짜고짜 "교실 조명의 법적 기준"을 언급하더니 내 교실 형광등에 설치 해 둔 실크천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이번 일과 진행상황이 비슷했다. 교실 형광등에 실크천을 설치한 의미와 담임교사의 의도, 까닭이 무엇인지 같은 건 궁금해 하지도 않았고,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도 않았다. 그저 법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교장과 교감은 치우라고 말했으니 안 치울거면 "너 혼자 알아서 그 책임을 지라"는 협박을 할 뿐이었다. 나는 곧장 교실로 가서 조도 측정기를 통해 수치를 확인한 뒤 법적 기준을 넘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고, 뜬금없는 협박은 이내 사라졌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 때의 일은 오늘 일의 전조 현상이었던 것 같다. 아마 그 때도 민원이 있었었나 보다. 교실과 수업에 관심이 아예없던 교장과 교감이었는데, 갑자기 교실환경에 관심을 가져서 의아했었는데... 반년만에 의문이 풀렸다.
 
[의심의 씨앗]
교감에게 처음으로 물어본 말을 다음과 같았다.
 
"교감 선생님, 아무래도 그 민원인이 누군지는 가르쳐주지 않으실거죠?"
 
국어 진단평가가 낮게 나와서 작년 수업 진행방식에 문제를 제기한 학부모가 누군지 궁금해졌다. 왜냐하면 그 아이가 누군지 알게되면 그 아이의 1년을 돌아보며 내가 뭘 더 해줬어야 하는게 있었는지, 내가 놓친게 뭔지 반성해 볼 수가 있을테니 말이다. 물론 나를 위한 변명도 더 잘 만들어낼 수 있을테고.
 
하지만 교감은 뜻밖에 말을 했다. 그 학부모가 학교에 대해 잘 아는것 같았고, 나를 탓하는게 아니라 나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좋은 의미에서의 충고를 하는 것 같아 학부모가 누구인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부모가 말하는 걸 그냥 자기도 동의했다고 했다.
 
 
이게 좀 문제를 일으킨다. 아직 학기초반이라 작년 우리 반 아이들이 지나갈 때면 인사를 하며 다가오는데... 그 아이들을 볼 때다 "이 아이의 학부모일까?", "저 아이의 학부모일까?" 하는 일종의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각각의 학부모와의 1년동안 나눴던 대화와 눈빛교환까지 전부 다시 떠오르며 과연 누가 불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동으로 마구 튀어오른다. 
 
참... 고약한 일이다.  끝.